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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연출과 강렬한 캐릭터가 있는 서사극

1.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원작은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입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일은 거의 무의미해요. 기본 스토리만 봐도 두 작품은 닮은 점이 거의 없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석유산업을 다루고 있다는 점만 빼면요. 원작을 언급하지 않고 그냥 만들었어도 아무도 뭐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2.

영화의 주인공은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석유업자입니다. 원래는 가난한 은광채굴업자였어요. 하지만 영화가 시작될 무렵 자기 은광에서 석유를 발견한 그는 잽싸게 석유시추업자로 직업을 바꿉니다. 시대를 생각해보면 잘 선택한 거죠.

영화의 줄거리 대부분은 플레인뷰가 리틀 보스턴이라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유전을 개발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를 얻어 땅을 싸게 사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유정을 파고, 대규모의 석유회사와 맞서 싸우고... 그런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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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이 주인공이고 20세기 초반의 미국이 무대이기 때문에, 전 당연히 영화가 다니엘 플레인뷰를 악당으로 그릴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보니까 아니더군요.

물론 그는 탐욕스러운 인간 혐오자이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그를 부도덕한 자본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에요. 그는 열심히 일하는 남자이고 특별히 부당한 방법으로 남의 권리를 빼앗지도 않습니다. 자세한 묘사는 없지만 리틀 보스턴 주민들에게 그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같지도 않고요. 그는 외롭고 불행한 남자로 늙어가지만, 그 역시 20세기 초반에 석유산업에 뛰어들어 거부가 되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어요. 평생을 구멍가게 주인으로 살았어도 결말은 같았겠지요.

암만 노려봐도 전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분명한 역사적 교훈 같은 건 찾지 못하겠습니다. 억지로 끼워넣으면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아요. 영화는 단지 특정한 성격을 가진 플레인뷰라는 남자가 20세기 초반의 석유산업에서 살아남으면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뿐인데, 전 그것으로 족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재미있고 캐릭터는 강렬하며 20세기 초반 미국의 분위기도 생생하게 전달되거든요.

플레인뷰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전 오히려 그에게 꽤 공감을 했습니다. 전 그의 우울한 인간혐오 정서를 이해했고 왜 그가 자발적인 고독과 위악 속에 자신을 가두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사는 세상은 암만 봐도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닙니다. 꼭 초기 자본주의 사회여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이라는 종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고상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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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영화에는 노골적인 공격 대상이 하나 존재합니다. 그건 바로 종교죠. 그것도 개신교.

개신교를 대표하는 인물은 리틀 보스턴의 교회 목사인 일라이 선데이입니다. 우린 별다른 노력없이 다니엘 플레인뷰의 장점들을 찾아낼 수 있고 그를 동정할 수도 있지만, 일라이 선데이에겐 그럴 구석이 없습니다. 그는 광신자이면서 위선자이고 사기꾼이며 협박범입니다. 이들 중 몇 가지는 모순되는 성격이지만 일라이 선데이의 정신과 육체 안에선 그 모든 단점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일라이 선데이와 그가 이끄는 제3계시교 교회에 대한 영화의 혐오감이 대부분 다니엘 플레인뷰의 관점과 일치한다는 점은 재미있습니다. 일라이와 교회는 플레인뷰의 정당한 사업에 기생하고 협박하는 불쾌한 방해꾼들입니다. 영화는 플레인뷰의 모든 행동에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교회와 맞설 때는 전적으로 그의 의견을 따릅니다.

영화의 혐오감은 일라이와 플레인뷰가 대결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충돌인지는 밝히지 않겠어요. 단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신나게 볼만한 내용이라는 점은 이야기해도 될 것 같군요.

5.

폴 토머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에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소 예외적인 영화입니다. 일단 시대극이잖아요. 앤더슨 특유의 스타일 과시도 찾기 어렵고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작품도 앤더슨 영화입니다. 스타일과 테크닉 과시가 이전보다 덜 노골적이긴 하지만 없는 건 아니란 말이죠. 11분 동안 대사 한 마디 없이 이야기를 꾸려가는 초반 도입부부터 그렇잖아요. 엄청난 야심을 품고 2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을 꽉꽉 채운 스토리텔링으로 영화를 끌어가는 태도도 그답고요. 특별히 사람이 변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거죠. <매그놀리아>와 같은 영화보다는 훨씬 노련하게 이야기를 통제하고 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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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군요. 멋집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고 종종 한없이 슬프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도 않죠. 그러나 그의 연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종의 성대모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도 밝혀두고 싶군요. 많은 사람들이 데이-루이스가 존 휴스턴의 연기 매너리즘을 모방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데이-루이스 자신은 말투를 위해 당시 구두역사기록을 참고했다고 하고요. 어느 쪽이건 그의 연기는 근사하지만 노골적인 흉내처럼 보입니다. 그게 나쁜 거냐고요? 아뇨. 여전히 정말 잘한 연기이고 어려운 연기죠. 대부분 평범한 배우들은 이런 경우 성대모사만 하고 마니까요.

7.

라디오 헤드의 조니 그린우드가 맡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OST는 정말 재미있어요. 그린우드는 기존곡들과 자신의 음악을 반반씩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조합이 상식적으로는 절대로 먹힐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아르보 페르트나 스크리아빈은 어떻게 섞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사이에 뻔뻔스럽게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끼워넣는 건 뭐냔 말이죠.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조합이 영화에선 굉장히 잘 먹혀요. 여전히 머리로는 안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통해 보면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08/02/22)

기타등등

이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

Posted by DJUNA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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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Tracked from Electronic sheep 2008/04/22 15:48  삭제

    ※ 영화 중요장면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이 글을 읽지 마세요. 대니얼 플레인뷰는 미국 전역에 여러 개의 유정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유정과 부를 찾아 석유사업을 계속 해나간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석유가 매장된 마을에 대한 정보를 주는 한 청년이 찾아오게 되고, 그는 유정을 찾아 의붓아들 H.W.와 함께 그 마을로 향한다. 대니얼은 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큰 부를 얻고 은퇴하여 조용히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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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을 참 좋아해서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네요. 그런데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게 헌정하는 것이 왜 당연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영화에 관한 지식이 깊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

  2.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등의 작품들이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그에 대한
    오마주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트만 감독도 그것을 기특...하게 여겼는지..^^
    자신의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 촬영 당시
    앤더슨 감독을 자신을 대신할 감독으로 대동하기도 했고요.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 세상을 떠난
    알트만 감독에 대한 예우를 한 게 아닌가 싶네요.

  3. 올해 최고의영화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빨리 보고 싶네요..

  4.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을 훌쩍 넘긴다니 관람시간대를 잘 선택해야겠네요.

  5. 다니엘짱 2008/03/09 18:48

    전 마지막에..영화 엔딩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나온 밝고 경쾌한 오케스트라였나 여하튼 전혀 상황과는 안 맞는 듯한 쌩뚱맞은 듯한 음악이 나오는 걸 듣고 약간 의아해했었죠 보통 그럴땐 슬프거나 조금은 비장한 음악이 나와야하는 게 아닌가하구요..근데 오히려 예상을 빗겨가서 더 기억에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