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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마누라>의 표절 혹은 오마주?

아마도 싱가포르 영화감독으로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내 곁에 있어줘>의 에릭 쿠일 것이다. 그가 1997년에 만든 <12층>에는 한 신인배우가 등장한다. 잭 네오(梁智强)라는 신인배우가 연기하는 아구(Ah Gu)라는 이름의 남자는 앞니가 툭 튀어나와서 얼굴이 그다지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남자이다. 그는 베이징 출신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여자가 싱가포르 영주권을 위해서 아구와 결혼을 했다고 쑤군댄다. 대륙에서 온 여자는 싱가포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부부는 항상 싸우는데 부인이 싱가포르 정부를 욕하면 남편은 정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면서 정부 욕을 하지 말라고 한다. 싱가포르 인들의 정부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 장면은 잭 네오의 실감나는 연기로 더욱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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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네오 감독

이렇게 텔레비전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던 잭 네오는 에릭 쿠의 인도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이후 그는 영화감독이 되는데, 차이니즈 뉴 이어 주간(우리의 설 주간)에 찾아오는 로컬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작년에는 그의 <Just Follow Law>가 설 연휴 기간에 개봉했었고, 올해에는 <Ah Long Pte Ltd>가 개봉했는데 이 영화는 현재 싱가포르 극장가에서 상영되고 있는 유일한 로컬영화이다.

잭 네오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그의 영화들은 매우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컨대, 도박을 하지 말자라든가 전과자들을 따뜻하게 대우하자 혹은 자녀 교육에 힘쓰자 등과 같은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계속 찍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지금 본 영화가 국정홍보처에서 돈을 받고 찍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것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작년에 나온 <Just Follow Law>가 정부 정책 홍보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녀의 신체가 뒤바뀐다는 설정은 진부하다 못해 짜증나는 것이어서 역시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 싱가포르 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가 조금은 들어 있어서 참고 볼만했다.

이번에 나온 <Ah Long Pte Ltd>는 불행하게도 더 나아지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일단 지적해야 할 것은, ‘표절에 가까운 차용‘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간단히 말해보겠다. 그러면 어떤 영화가 금방 떠오를 것이다. 범문방(Fann Wong)이란 여배우(이 여배우는 <상하이 나이츠>에 출연했었다)가 맡은 리 후와(Li Hua)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갱단의 넘버 투인데 한마디로 깡패다. 그녀는 빨리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남자를 하나 골라서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한 후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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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러한 설정은 한국영화인 <조폭 마누라> 1편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현지 언론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잭 네오는 “<조폭 마누라>를 본 적은 없고 그런 영화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일까? 현지 신문인 ’스트레이츠 타임즈‘는 <조폭 마누라> 1편과 잭 네오의 이번 영화를 비교하는 내용을 도표로 작성해서 기사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한국영화가 동남아로 뻗어나가 급기야 싱가포르에서 베끼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어설프지만 싱가포르의 사회비판이 담긴 영화

잭 네오는 <조폭 마누라>만 참고한 것은 아니다. 라이벌 갱단끼리 축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축구장이 아니라 뒷골목에서 그리고 축구공이 아니라 열대과일인 두리안으로 축구를 하는데, 그 장면은 주성치의 <소림축구>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 아니 좋게 말해서 주성치에게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이렇게 이 영화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런 틀 안에서 잭 네오는 말레이시아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말레이시아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영화 속 대사는 만다린과 더불어 광동어와 호키엔을 함께 사용한다. 물론 이것은 나와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런 전략은 이쪽 동네에서만 통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잭 네오의 영화는 그야말로 ‘로컬 영화’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이해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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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어찌되었든 영화가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데에 있다. 영화의 편집은 얼기설기 갖다 붙인 것 같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조폭 마누라>처럼 액션이 화끈한 것도 아니고, 주성치 영화처럼 황당한 재미를 주지도 못한다. CG의 사용도 어설프기만 하다. 의미 없는 애니메이션 장면의 삽입 역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웃었던 단 하나의 장면이 있다. 리 후와의 보스는 은퇴를 선언했었지만, 그녀의 조직 혁신안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런 와중에 라이벌 갱단과 충돌이 일어나고, 그 갱단의 비열한 두목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 대신에 어떤 무기도 없이 축구 시합을 제의한다. 축구 시합에서 지면 구역 전체를 넘기기로 약속을 한다. 그런데 라이벌 갱단은 두리안으로 공격을 한다. 이 열대 과일 껍질은 마치 가시가 돋친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리 후와의 갱단은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데 알고 보니 리 후와의 보스가 라이벌 갱단 두목과 내통을 하고 있었다. 라이벌 갱단 두목이 리후와를 두고 순진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자, 보스는 그녀가 싱가포르에서만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싱가포르인들은 순종적(obeidient)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비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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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언론은 싱가포르를 매우 좋게 평가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 내용은 싱가포르 사회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이고, 정치인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도 볼 수 없고, 시위도 벌어지지 않으며 파업도 없다. 종합일간지와 방송국은 하나뿐이다. 그러니 한국의 보수언론이나 보수적인 정치세력이 좋아할만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사회를 유지하는 대가는 시민들이 순종적이어야 하고 많은 규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과연 그런 사회가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잭 네오는 분명 싱가포르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리사채업에 대한 풍자를 하고 시민들에게 그것이 주는 피해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의도가 좋긴 하지만, 하나의 작품으로서 높은 평가를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좀 심하게 말하면, 차라리 국정홍보 혹은 캠페인용 영화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영화에서 창의적인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잭 네오는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점점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고민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내년 차이니즈 뉴 이어 기간에는 좀 더 나은 잭 네오의 영화를 보고 싶다.

<Ah Long Pte Ltd> 공식 사이트 바로 가기


Posted by Ryu Sang 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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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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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인 2008/02/13 16:17

    이전엔 올드보이를 그대로 베꼈다는 인도영화가 있더니...

    이젠 싱가포르까지... =_=

    한류...일까요?... 아무튼 해외의 신기한 영화평 잘 보았습니다~

    • Ryu Sang Wook 2008/02/13 18:29

      이것도 한류라면 한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에 와서 한국의 대중가요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이미지에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맞구요...

  2.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셨군요..
    덕분에 좋은시간 잘 읽고 가요~
    행복한 2월 보내세요

  3. 죽인다 2008/02/13 17:27

    죽이는군요.. 역시 조폭마누라 ㅋㅋㅋ
    표절이겠지 ㅋㅋ
    수입되면 함 보고싶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기 류상욱님.. 주성치 새영화도 소개해주세요 ㅠ.ㅠ

    • Ryu Sang Wook 2008/02/13 18:25

      고맙습니다. 주성치의 새 영화는 여기에서도 흥행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대로 소개글을 올리겠습니다...

  4. 젝 네오는.. 2008/02/13 17:37

    생긴거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필이 나는데...

    • Ryu Sang Wook 2008/02/13 18:31

      싱가포르 사회의 주류는 중국계입니다. 여기에 말레이계와 인도계 그리고 많은 소수인종들이 살고 있죠. 그래서 아시아의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데, 현상적으로 인종들 사이의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하죠...

  5. 딱 한마디 나오네요. 범문방이 아깝습니다. 진짜로......

    • Ryu Sang Wook 2008/02/13 19:12

      이 여배우도 캐릭터에 별로 어울리지 않고, 이쁘게 나오지도 않아서 별로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6. 베끼는세상 2008/02/13 22:30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세상이군요
    안타깝습니다. 조폭마누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던
    영화였는데.. 이왕이면 리메이크 계약을 맺고 만들던가 하지
    양심 불량!!!
    그래도 스틸보고 있으니 보고 싶긴 합니다 ^^;

  7. 베끼는세상 2008/02/13 22:39

    한가지 빼먹어서 다시 댓글을.. ^^;
    저도 장강7호의 류상욱님의 글을 보고 싶습니다
    글이 너무 좋으세요.. 이런 색다른 영화를 소개해주시는것도 좋구요 ㅎㅎ

  8. 그랬구나 2008/02/13 22:56

    사실 싱가포르에 대해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발전된 나라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 깨끗하고 시민의식도 깨어 있어서 왠지 선진국이라서 우리나라가 롤모델로 삼아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충격이네요...

    • Ryu Sang Wook 2008/02/13 23:06

      음, 충격까지 받으실 것은 없구요.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과 실제는 조금 다를 수 있는 것이겠지요. 깨끗한 것은 서울과 비슷한 정도인 것 같은데, 그렇게 시민의식이 깨어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1인당 GNP는 한국보다 높지만 이곳은 작은 도시국가이니 경제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죠. 도시국가라서 비교적 효율적으로 관리가 되는 것이고 어떠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롤모델이 되기에는 좀 부족해보이는 것도 사실인 듯 싶습니다.

  9. 잼있다 2008/02/14 13:12

    완벽한 표절이네요 ㅎㅎ
    뭐 한국에서도 남의 영화 카피하는건 흔한 일이니
    뭐라 하기도 힘들겠꾼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장강7호 보러 곧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