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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릴러의 모범 답안

<공공의 적> <살인의 추억>에 이어 한국 스릴러 영화의 걸작이 탄생했다. 신예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벌이는 하루 동안의 지독한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추격하는 사람이 형사가 아니라, 출장 안마소의 사장이다. 그의 전직이 형사이긴 하지만, 대체 어찌된 일일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 기생하며 살아가던 그가 왜 연쇄살인범을 잡겠다고 나서게 된 것일까? 여기에 <추격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 남자는 왜, 어떻게 이 지독한 추격에 말려든 것일까? 그 추격을 통해서 그는 어떻게 변할까? <추격자>는 전형적인 스릴러영화의 공식을 탁월하게 이용하면서도, 독특한 자신만의 이야기와 화법을 개성적으로 연출한다.

핸드폰 번호가 4885로 끝나는 전화를 받고 나간 여자들이 족족 사라진다. 그 놈이 여자들을 팔아먹었다고 생각한 출장 안마소 사장이 추적에 나선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실제로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체포하는 데 큰 공헌을 세운 사람은, 속칭 보도방을 운영하는 이들이었다. 돈줄이던 여자들을 뺏어간 놈을 찾아내려던 그들의 노력 덕분에, 한국 범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의 하나였던 유영철 사건의 해결이 가능했던 것이다. <추격자>는 그 실제의 사건에서 모티브를 빌려온다. 그리고 아주 세련되게, 아주 극적인 상황으로 모든 것을 탈바꿈시킨다.

미진을 불러낸 남자가 범인이라고 판단한 엄중호는 당장 망원동으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미진의 핸드폰이 꺼지고, 망원동을 정신없이 헤매던 중호는 지영민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가 바로 4885인 것을 알게 된다. 중호는 골목을 죽어라 달린 끝에 영민을 잡았지만, 순찰중인 경찰에게 붙들려 함께 파출소로 간다. 영민은 자신이 여자들을 판 게 아니라 죽였다고 실실거리며 털어놓고 사건은 급 전개된다. 그러나 영민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영민의 주소지는 안양이고, 살던 곳은 망원동의 허름한 반지하 단칸방이다. 과연 어디에 미진은 있는 것일까? 그 와중에 미진의 7살짜리 딸까지 떠안게 된 중호는 밤새도록 영민의 흔적을 찾아 망원동 일대를 헤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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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영민을 잡기 위한 추격전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복잡하다. 영민은 모든 것을 진술하지만, 실질적인 증거는 전혀 내놓지 않는다. 검사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려 한다. 중호는 미진이 살아 있고, 그 곳이 망원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찰은 시체를 유기한 장소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심증은 가지만, 아무 것도 제대로 들어맞지가 않는다. 관객은 그 뒤틀린 상황을 보며 조바심을 내고, 중호의 답답한 심정에 동참하게 된다. <추격자>는 중호가 아주 조금씩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을 대단히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 스릴러 영화의 핵심인 쫓고 쫓기는 과정을, 실제의 추격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추격전까지 리얼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추격자>가 뛰어난 점은, 추격의 와중에서 그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범죄자를 잡는 형사에서 법을 어기는 출장안마소 사장으로 전락한 중호의 황폐한 인성은, 애절하게 미진을 찾아 헤매다 만난 미진의 딸을 감싸 안으면서 딱딱한 껍질이 벗겨져 나간다. 단지 돈을 원했던 중호는, 추격의 과정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연쇄살인범, 그 악마가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짓밟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홍진 감독은 그것을 결코 서툰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드러나는 상황은 분명히 신파적이지만, 인물의 감정을 극한까지 짜내지 않는다. 적절하게 감정조절을 하며, 관객의 분노와 슬픔이 중호와 공명하게 만든다.

한국의 스릴러 영화가 가진 치명적인 결점은 리얼리티의 문제였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사건이나 트릭을 적당히 세련된 화면이나 엽기적인 장면으로 메우려고 안간힘을 쓰기 일쑤였다. 지난 해 흥행 성공을 거둔 <세븐 데이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형사사건을 새로 맡아 일주일 만에 승소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0.0001%의 가능성도 없는 설정이다. 우연과 우연이 몇 번 겹친다거나, 아주 희박한 가능성의 설정이라면 그나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설정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모든 이야기가 비현실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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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추격자>도 허술한 구석이 있다. 경찰의 묘사나 판단은 때로 납득이 가지 않고 형식적이다. 하지만 <추격자>는 무리하지 않는다. 실재했던 상황을 더욱 교묘하게, 더욱 절박하게 꾸미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것은 <살인의 추억>과도 흡사하다. 다만 <살인의 추억>이 당대의 사회적 풍경과 인물들에 더욱 치중했다면, <추격자>는 추격의 과정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추격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세밀하게.

<추격자>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극적인 순간을 잡아낸 영화다. 그 각색의 탁월함도 놀랍지만, 현실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할리우드나 일본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영화나 소설이 무수하게 많다. 실제 사건을 거의 동일하게 재현한 <조디악>이 있는가 하면, 인물과 기본 설정만 빌려온 <도망자>의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도 현금수송차에서 3억엔을 탈취해 사라진 미제사건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범인이 명확하지 않은 미제사건이라면 더욱 더 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추격자>의 성취는 탁월한 각본과 연출 그리고 실재했던 사건의 아우라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다. 유영철 사건의 세부를 기억하고 있다면, <추격자>가 그려낸 실제 사건의 인용과 변형 그리고 더욱 극적으로 창조한 인물들의 생생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추격자>는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아도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다.


관련 리뷰
2008/01/29 - [최신개봉작 / 예정작] - 추격자 (2008) by Djuna

Posted by makeneko

익스트림무비 추천 도서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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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리뷰] 추격자 (2008)

    Tracked from 스테판's Movie Story 2008/02/04 17:32  삭제

    엄중호(김윤석 분)는 전직 경찰이었으나 뒷돈을 받은 일로 옷을 벗고 지금은 보도방 업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래 들어 그런 그가 관리하는 아가씨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그는 그저 돈떼먹고 도망갔다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보도방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해서 찾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라진 아가씨들이 ‘4885’라는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한 손님에게 불려 나간 후,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때 마침 미진..

  2. Subject: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 추격자 (스포일러 없음)

    Tracked from Jerry's BLOG 2008/02/16 22:49  삭제

    오늘 추격자라는 한국 영화를 봤습니다.유영철의 연쇄 살인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영화로 신인인 나홍진 감독이 만든 영화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각종 블로그와 극장 사이트의 평가가 워낙 좋아 기대를 하고 봤습니다.영민과 중호의 인물을 정말로 잘 표현한것 같았습니다. 특히 중호를 연기한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그 내공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쏘우와 같이 잔인한 장면 과정을 하나 하나 직접 보여주지 않아 보는...

  3. Subject: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 추격자

    Tracked from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2008/02/19 14:15  삭제

    허 참, 신인감독이 만든 장편영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교활하고, 능글능글하다.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잡힐 듯 말 듯한 추격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김이 빠지기는 커녕 영화를 감상하고나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니. [복수는 나의 것]이나 [살인의 추억]이 거친 이야기를 말쑥하게 뽑아낸 느낌이 있다면, [추격자]는 이런 이야기는 이렇게 투박하고 간결하게 그려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어떤 패기마저도...

  4. Subject: 추격자-악조건속에서의 값진 승리~

    Tracked from Movie rewind 2008/03/12 16:07  삭제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아져서 도통 짬을 못내다가 오랜만에 나온 좋은 한국영화를 스크린에서 보길 놓칠까봐 도저히 안되겠어서 어렵스레 모니터링을 핑계로 첫 타임으로 봤다. 오전 시간이기도 하고 개봉한지도 꽤 된지라 관객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주변에 한 50여명과 섞여서 봤다. 그 중엔 특유의 아줌마들( 그 있지 않은가... 드라마 보면서 그 상황 설명하고 얘기하는 그 특유의...여자라서 그럴까요? 아줌마가 되면 그런걸까요? 누가 설명좀? ㅎㅎ) 과 섞여..

  5. Subject: 정신나간 영화 '추격자'... 왜 여성단체는 입 다물고 있는가?

    Tracked from Image Generator 2008/03/19 04:30  삭제

    불광 CGV 3관에서 추격자를 관람했다. 제목은 미안하지만 낚시다. 읽을 사람만 읽으시라. (뭐 요즘은 미리보기가 다 되니까 알아서 필터링 하겠지만서도) 결론부터 말하면, 400만 넘었다던데,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돈 보고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단, ROK에 서식하고 있는 상식적인 남성들에 한해서. 나홍진이라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라는데, 아, 신인감독이 이 정도라니! 처음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사람 께나 이 바닥에서 굴렀겠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약간의 스포일러성은 있지만 분석이 탁월하시네요
    추격자의 그 긴장과 스릴 그리고 터져나오는 웃음 그리고 감동...
    너무 멋진 영화이더군요
    그냥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감동적이었고
    또한 조연 배우들의 감칠나는 연기와 코믹한 캐릭터등이 너무 멋졌습니다
    특히 똥 던진 그 아저씨 ㅋㅋㅋㅋㅋㅋㅋ
    별표 100개중 99개를 주고 싶은 최고의 영화입니다

  2. 암울한 근래의 한국영화계에 가뭄 속 단비같은 영화랄까요^^

  3. 아고몽 2008/02/04 17:56

    엄청 기대중입니다!
    어서 가서 보고싶어요 ㅠㅠ

  4. 티엘린 2008/02/04 18:24

    이영화 정말 기대됩니다...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오기를 ㅠㅠ 한국영화 화이팅 ~!!

  5. 자유인 2008/02/04 22:35

    2/14일 개봉인 것이 맘에 걸리지만...

    입소문이 강하게 나서 "꼭" 흥행에 성공했으면 합니다~

    괜히 잔인해보인다고 사람들이 피하지만은 않기를~

    꼭 개봉날 보려구요~

  6. 강호수 2008/02/05 10:14

    이영화가 왜 설대목에 개봉을 못잡았지? 올해 대박영화 같던데.... 살인의추억을 생각나게끔

    하는 솔직히 살인의추억보단 못함^^ 살이느이추억이 워낙 잘만든영화라..하지만 몇년동안에

    본 한국영화중 추격자는 단연 으뜸!!!!강추하는영화!!!!!!!

  7. 추격자 2008/02/05 10:37

    다 좋은데
    잔인해서 안좋아. 애들 따라할거같고 누군가 유영철처럼 또 저러고 다닐테고,
    가족들 당사자는 얼마나 가슴이 터질까.
    이런영화는 솔직히 만들어지면 안되는 영화..ㅠㅠ

    • 영화 2008/02/15 06:39

      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면됩니다
      잔인하기로 따지면 이 영화보다 더 잔인한
      영화 많습니다
      미국 일본들은 이런류 작품들 만들면 안되겠네요
      영화는 영화자체로 보면됩니다
      그이상확대해석하기시작하면 영화 아예 못만들게 해야합니다

  8. 시사회 놓친게 아쉽네요...-_-;;
    혼자라도 극장 가서에서라도 꼭 봐야지....

  9. 어제 시사회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짜릿한 여운이 한참을 가더군요.
    러닝 타임 내내 온몸을 긴장하며 볼 만큼 잘 만든 영화입니다.
    윗분 말처럼 모방범죄가 염려되긴 합니다만...
    영화 자체만으로 볼 때 단연 베스트!! 강추합니다!

  10. 간만에 좋은 한국영화 한편이었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난 뒤의 그런느낌..
    데뷔작이란게 믿기질 않네요...

  11. 우희용 2008/02/17 12:08

    허술한 구석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수긍하기 좀 그렇네요. 경찰들을 무질서하고 관료적으로 묘사한것이 제 생각에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거 같습니다. 거기에 잡혀있는 엄중호의 심리를 더욱 잘 연출해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수도 있구요.
    아무튼 대단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12. RobbieHolic 2008/03/03 00:48

    <추격자>가 스릴러의 모범이라뇨.
    차라리 <세븐데이즈>가 더 근접해있죠.
    길가다 차박아보니 범인이더라... 리얼리티를 정말 잘살렸네여.

  13. 어이상실이다.
    세븐데이즈따위와 추격자를 비교하다니
    님아... 너무하잖아 -_-

  14. 정말 가슴에 남는 영화 봤구나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