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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 낭만이 교차하는 대정전의 밤

요즘에는 정전이 되는 경우가 여지간해선 없다. 있다 해도,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전력의 양이 많아 자동으로 차단되는 정도다. 한 지역이 완전히 정전되거나 하는 경우는 커다란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정전도 이제는 그리 일상적인 경험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도시 전체가 암흑에 잠기는 대정전은 거의 재난이나 악몽에 가까운 극단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대정전의 밤에>는 도시에 찾아 온 대정전의 순간에 벌어지는, 화해와 용서를 그리고 있다. 따뜻한 시선으로, 로맨틱하게.

크리스마스이브의 도쿄에 대정전이 찾아온다.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빠져 들어간다. 과거나 추억 혹은 뒤틀린 관계나 잃어버린 무엇을 떠올리거나 찾으면서 그들은 어두운 도시를 헤매게 된다. 재즈 바의 주인인 남자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여인을 잊지 못한다. 감옥에서 나와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간 남자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유방암에 걸린 모델은, 내일 수술에서 가슴을 잘라내야 한다. 직장에서 바람을 피던 남자는,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알고 있던 어머니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정전의 시간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유부남을 사랑한 대가로 상처를 받은 여인은 상하이에서 온 연수생과 호텔 엘리베이터에 갇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 아이를 낳았다는 고백을 들은 할아버지는, 우연히 임신한 여인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탄생의 기쁨을 함께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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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전의 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사람도 있고, 버린 사람도 있다.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도 있고, 그래도 뭔가 희망을 움켜쥐려는 사람도 있다. ‘정전’이라는 특수한 사건은,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다. 그들이 서로 만나면서, 그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미래의 시간을 이야기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대정전의 밤에>는 화해의 이야기다. 그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일어설 용기를 갖게 된다.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은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그 이상을 보게 된다. 서로 만나는 그들은 모르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더욱 깊은 관계가 맺어져 있음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세상의 신비 혹은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은 세상에 그런 기적들이 존재한다. 다만 <대정전의 밤에>가 그런 기적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씨줄과 날줄로 잘 짜인 사람들의 관계는 흥미롭지만, 너무 느리고 진지하다. 어차피 ‘대정전’이라는 기묘한 사건 덕분에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더욱 극적이었어도 좋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처럼.

<대정전의 밤에>를 만들게 된 이유는, 1993년에 실제로 벌어진 뉴욕 대정전에 대한 인상 때문이었다. 정전이 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하지만 <대정전의 밤에>가 대단히 낭만적인 것에 비하여, 현실의 대정전은 그리 화사하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거의 폭동에 가까운 아비규환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빛이 사라져 버린, 우리 문명의 핵심인 ‘불’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인간은 극단적인 공포를 느끼게 된다. 추억을 그리워하기 이전에,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의 욕구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어둠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악당들까지 가세하면, 대정전은 그야말로 지옥에 가까운 상황일 수도 있다. 하룻밤은 짧은 것 같지만, 사실은 무엇이든 가능한 긴 시간이다. 암흑의 순간에는, 갖가지 범죄가 일어나게 된다.

<대정전의 밤에>가 약간은 작위적인 동화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다. 낭만적인 이야기를 위해서 대정전이라는 사건이 선택된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대정전이라는 상황은 그런 낭만을 느끼기에는 너무 가혹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동화라고 해도, <대정전의 밤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Posted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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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비현실적이다 이거군요.
    영화 찍을때 조명은 좀 덜 들었을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