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세상을 서늘하게 풍자한 걸작 스릴러
코엔 형제의 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은 코맥 맥카시의 동명 소설입니다. 코엔 형제가 전에도 남의 소설을 각색한 장편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던가요? 그것도 아주 충실한 각색이랍니다. 대사도 거의 바뀌지 않았고 사건 진행 순서도 그대로라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징그러울 정도로 코엔 형제풍으로 느껴지는 건 그만큼 원작과 감독들의 궁합이 좋다는 이야기겠죠. 그래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이나 메시지의 일차 책임은 맥카시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는 굉장히 친숙한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평범한 남자에게 떨어진 돈가방이죠. 베트남 참전군인인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1980년입니다) 은퇴한 용접공 르웰린 모스는 사냥하러 나갔다가 총격전으로 살해당한 시체들과 돈가방 하나를 발견합니다. 당연히 가방을 가지고 온 그는 괴상한 헤어스타일을 한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안톤 시거에게 쫓기는 몸이 되지요. 모스는 아슬아슬하게 달아나지만 늘 그 뒤에는 그들의 싸움에 말려들어 애꿎게 희생당한 시체들이 널립니다.
얼핏 보면 영화는 익숙한 교훈극 같습니다. 비슷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샘 레이미의 영화 <심플 플랜>처럼요. 남의 돈가방을 봤으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경찰에 신고할지어다. 이 이야기는 그만큼이나 익숙한 하드보일드 소설의 틀을 빌어 전개되는데, 하드보일드 장르물로 봐도 영화는 재미있어요. 모스나 시거는 모두 사냥의 규칙을 알고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나 영화는 전통적인 교훈극도 아니고 하드보일드 물의 장르에 충실하지도 않습니다. 그에 맞는 초반 설정들이 제시되긴 하지만 그뿐이에요. 보통 이런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운명은 장르와 교훈에 맞추어 재단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일단 설정이 주어지면 장르의 보살핌 없이 혼자서 세상과 싸워야 하고 그 앞날은 아무도 예측 못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세 번째 주인공의 존재이유가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세 번째 주인공은 도입부에서 나레이션을 맡았던 나이 든 보안관 에드 톰 벨입니다. 형식적으로 그는 이 영화의 탐정이지만 <파고>의 마지 군더슨처럼 적극적이지도, 낙천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선악을 구별하기 불가능한 카오스이며 그나마 그 카오스도 궁극적 종말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돈가방 사건은 그를 증명하는 또다른 예에 불과할뿐이죠. 고로 그는 세상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의 유일한 선택은 도피입니다.
맥카시와 코엔 형제가 그리는 세상은 참 가차없습니다. 너무나도 매정하고 무작위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머 감각까지 느껴지지요. 이 영화에는 나쁜 사람들도 많지만, 곤란에 빠진 사람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려는 선한 사람들도 그만큼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대부분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결과를 맺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거의 브라운 운동에 휩쓸려 날아다니는 먼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악당 안톤 시거는 오히려 안심이 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지만 적어도 원칙은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쉽게 읽을 수 있고 행동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데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컴컴한 블랙 코미디의 정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죠.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인물입니다. 그 뻔뻔스러운 자기확신과 인간세상의 기본준칙에 대한 철저한 무시는 그의 괴상한 헤어스타일과 둔감한 얼굴만큼이나 희극적이죠.
아마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비극은 피투성이 코미디언의 시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퇴장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영화가 이 희비극적인 처절함을 응시하는 관점은 뜻밖에도 진지합니다. <파고>보다 더 진지해요. 그 점에 있어서 코엔은 원작자 맥카시에게 상당히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이 영화의 라스트신은 이전의 엔딩들과 느낌이 달라요. 좋은 의미에서요. (08/01/31)
기타등등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은 예이츠의 <비잔티움 항해>에서 따온 것이니, 이 제목의 정확한 번역은 <(이곳은)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가 아닐까요? 번역에 따라 영화의 의미도 조금 달라집니다.
2008/02/2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No Country for Old Men(2007)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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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양들의 침묵의 안소니 홉킨즈와 대등한 악마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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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형제 작품이라 해서 관심에 두고 있었는데 글을 보고나니 더더욱 보고 싶어지는군요.
어제 저도 시사회로 봤는데 영화 정말 좋았습니다.^^
2시간이 넘는 영환데도 언제 시간이 갔는지...
전혀 지루함 없고. 작가 영화지만 장르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는 긴장감과 오락성을 가지고 있더군요.
살짝 트랙백 걸고갑니다~
씨네리보니까 전세계 잡지들이 올해의 영화에 꼭집어넣던데.... 그렇게 잘됐나봐요.. 꼭 봐야겟네요...
어톤먼트랑 이영화는 꼭 보고싶음
트랙백 살짝 걸고 갑니다. ^^
블로그 너무 잘 꾸미시는 듯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크맨님이 애써서 블로그 모양새가
지금처럼 나온 건데...
더 잘 꾸미려고 계획 중입니다..^^;;;
저도 시사회로 봤는데 좋았습니다^^
하비에르바르뎀인가요?
정말 상 받을만한 연기였습니다!
다시한번 보고싶네요..
마지막장면의 대사가 자꾸 맘에 남네요..
요즘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좀더 보여주기위해..많은 방법을 쓰는듯하네요.대놓고 다큐라면 이해가 될지몰랐으나 낯익은 닉놀테와 보안관을 보노라니..권선징악결말이 되지않나했었는데 허무하면서 과학적(브라운운동처럼 동전뒤집기로 나타내는 주제암시) 결말은 다소 당황스럽습니다.어쩜 타란티노의 영화의 생명력은 같은 저예산이면서도 적재적소갈고닦은 씬들을 누벼짜깁으면서 완성도높은 새로운시각을 보여준다는데 있다면..이 영화는 다소 허무한 결말이 리얼리티이며 인생은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는 등의 요소를 강조한것이 되는데 적절한 배합의 묘미였는지는 초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애니 "카"에서의 라이트닝실사를 이용한 과학기술적 리얼리티 구현이나 람보4의 보톡스와는 대비되게 극사실살인(예전엔 군대총기사고에서나 보여질법한 묘사..)등을 양념으로 섞어 리얼리티에 접근한 경우와는 또다른식의 접근이었지 않나 싶습니다.허긴 엊그제 1000원짜리 복권당첨되었다고 아점마한테 돈으로 바꿔달랬더니 복권으로 가져가란말을 정초부터 들으니..다소 당황스럽긴 하더군요..
인생의 우연의 연속이나 머피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그런데 웬지 다큐가 이런영화의 끝은 아닐지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있는그대로를 보여준다는 형태라면 포르노영화도 일종의 리얼리티장르에 포함될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