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 밑에서...>는 작고 납작한 전통 가옥들이 거대한 콘트리트 탑인 반 서구식 아파트에 자리를 내준 뒤부터 아시아 곳곳에 솟아나기 시작한 그 음침한 귀신 이야기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하긴, 이런 건물들의 뱃속에 살다보면 귀신을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콘크리트의 칙칙한 회색부터가 정상적인 삶의 색이 아니잖아요. 이런 정체불명의 건물이 몇 십 층까지 올라가면 "아직도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따위의 이야기가 만들어질만한 섬뜩한 익명성이 태어나게 되지요.
영화의 스토리는 굉장히 전통적입니다. 아마 줄거리만 들었다면 동아시아 어딘가를 떠돌다 인터넷에 안착한 도시 전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종된 아이의 원혼이 떠도는 아파트에서 귀신을 보는 모녀 이야기지요. 유령은 나중에 몸소 모습을 드러내지만, 영화 대부분은 유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한두가지 암시만이 등장할 뿐입니다. 옥상에 떨어져 있는 빨강 가방과 천장에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요.
<검은 물 밑에서...>는 <링>의 스즈키 코지와 나가타 히데오가 다시 손을 잡고 만든 두번째 영화입니다. 당연히 관객들은 두 편을 비교하게 되지요. 대충 장단점이 있습니다. <링> 역시 도시 전설 풍의 이야기를 짜맞춘 이야기지만 소재면에서 꽤 참신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은 물 밑에서...>는 굉장히 전통적인 동양식 귀신 이야기지요. <링>은 바로 그런 소재 때문에 다소 거칠고 작위적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검은 물 밑에서...>는 바로 그 전통성 때문에 당위성을 억지로 호소할 필요가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맘에 드느냐는 취향 문제죠. 전 <검은 물 밑에서...>가 편했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기가 더 쉬웠다는 거죠.
<검은 물 밑에서...>는 스타일면에서 특별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링>이나 <여우령>과 같은 전작들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이 영화에서 효과적인 것은 시각적 이미지를 위한 기본 개념이지, 그걸 구체화시키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감독보다 작가에게 더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느린 편입니다. <링>도 비슷하게 느릿느릿한 영화였지만 <검은 물 밑에서...>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군요. 아마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몇몇 반복들은 줄이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많습니다. 마치 중국 물고문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은 원인이 되는 사건과 직접 연결되면서도 죽음의 절묘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들 역시 효과적이고요. <링>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원래 예술가들이란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법이니까요.
<검은 물 밑에서...>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적절하게 등골이 오싹하면서도 약간 서글픈 뒷맛이 남는 동양식 호러 영화의 수순을 모범적으로 따라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얌전함 때문에 새롭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겠더군요. <링>처럼 이슈를 조성할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02/07/17)
기타등등
세입자가 물이 샌다고 끝도 없이 하소연을 하는데도 위층에 올라가보는 간단한 수고 한 번 하지 않는 관리인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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