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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귀 (2)



“사람들이 제 주위를 에워쌀 즈음 저는 진짜 비명을 지르고 있었죠. 제 비명에 제가 놀랄 만큼 크고 날카로운 소리였어요. 비명을 지르고, 놀라고, 더러는 구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다 전기 나가듯 퍽 하는 소리가 고막에서 나는가 싶더니 모든 소리가 뚝 그쳤어요. 제가 지르던 비명소리도, 사람들의 비명도, 웅성거림도, 모든 소리들이 리모컨의 ‘조용히’ 단추를 누른 티브이처럼 완전히 사라졌어요. 어항 속 금붕어들처럼 입을 뻐끔대며 사람들이 연신 제게 뭐라 말을 했지만, 하나도 안 들렸죠.

그 순간부터 제 귀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어요. 저로서도 모를 일이에요. 제가 왜 귀머거리가 되었는지……. 의사들은 고막이 손상되었단 사람도 있었고,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거부한단 의사도 있더군요. 하지만 제 청력을 되살리는데 성공한 의사는 없었어요. 뭐, 업보일지도 모르죠. 착한 형 죽게 한 업보. 그렇게 저는 ‘조용히’ 세상을 살게 된 거죠.

물론 형 죽은 거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컸던 건 그 때 그 트럭 바퀴가 형의 머리 위에서 멈춘 게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만 더 미끄러졌어도 큰일 났을 텐데, 하는 안도감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모든 사건이 내 장난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걸 나 말고 누가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죠.

아무튼 그런 일이 나 말고 형한테 일어났다는 사실이 마음 속 음습한 곳에 자리 잡은 사악한 이기심을 만족시켰고, 비록 귀가 안 들리게 되었을지언정 머리가 터진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는 치졸한 안도감이 저를 죄책감에서 해방시켰죠. 물론 지금이야 차라리 형의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후회하고 있긴 하지만요.

그렇게 몇 년이 흘렀어요.

다행히 아무도 저에게 그 날의 일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형의 터진 머리를 뒤집어써야 했던 저를 위로하고 감싸주었죠. 저도 그 날 일로 무척이나 큰 상처라도 입은 양 행동했거든요.

사건이 난 한 해 동안 학교를 일 년 쉬고, 그 다음 해부터 특수학교에 다녔어요. 지금 사용하는 독순술도 그 때 배운 거구요. 다행히 선천적인 귀머거리가 아니라서 남들보다 더 빨리 독순술을 익힐 수 있었죠.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귀가 먹었다는 걸 제가 밝히지 않는 한, 아무도 귀머거리란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죠.

듣지 못한다는 불편 외에 다른 애로사항은 없었어요. 오히려 모든 잡음이 사라진 고요 속에 살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롭기까지 하더군요. 세상과 동떨어진 평화랄까요. 더러는 그런 평화를 즐기기도 하면서 살았죠. 악다구니 써가면서 소음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되려 안쓰러울 정도였다니까요.

그 평화가 깨진 건 제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핸가, 원래 부양하던 큰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거처가 마땅치 않게 된 친할머니가 저도 돌볼 겸 우리 집에 들어와 사시게 되고 이 년이 지나서였을 거예요.

할머니는 그 해 여든이 넘으신 연세였는데도 별다른 노환도 없이 정정한 분이었죠. 게다가 형이 죽고 귀까지 먹은 저를 무척이나 귀애(貴愛)해주셨죠. 할머니는 사골을 푹 고아 끓인 우거짓국을 자주 해주셨는데, 그 구수한 맛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네요.

할머니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저에게 사골우거지국을 사발 가득 담아 상을 차려주시고 그걸 먹는 저를 상 너머로 넌지시 바라보곤 했죠.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전 참 좋았어요.

그런데 그 날, 여느 때처럼 사골우거지국을 먹고 상 너머로 할머니가 앉아 계시던 그 날 오후 제 귀에 어떤 미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환청이 아닌가 싶을 만큼 미미한 소리였어요.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방 같은 게 바닥에 살짝 끌리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너무 미미했기 때문에 사실 어떤 소리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죠. 하지만 소리가 들렸다는 것만은 분명했어요. 몇 년을 귀가 먹은 채로 살아오는 동안 소리가 들린 건 처음이었거든요. 물론 귀가 먹었기에 다른 감각이 훨씬 예민해진 건 사실이었지만, 청각이 감지하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거든요.

저는 할머니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냐고 여쭤봤어요. 할머니는 한동안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더니, 옆집 개가 짖는 소리 말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옆집에 누가 찾아왔는지 개가 짖어댄다고. 아니었어요. 저한테 개 짖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도 않았거든요. 그게 아니라고, 그 소리 말고 다른 소리는 안 들리시냐고 재차 여쭈니, 할머니는 그거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시며, 우리 애기 귀가 이제 나으려고 그런가 보다며 좋아하시더군요.

하지만 그 일은 전혀 좋아할 일도, 반길 일도 아니었지요.

그 날 저녁 무렵에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좀 더 또렷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는 불분명했어요. 아무리 귀 기울여 봐도……. 잠결에 들리는 사람 목소리 같은 환청 같기도 했고, 여러 사람들이 낮게 웅성대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하수구 속에 가득 찬 설치류들이 바글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점액질의 공장 폐수가 구물구물 흘러 내려가는 소리 같기도 했죠. 분명한 건 결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란 거였죠.

소리는 집 주위에서 들려왔어요. 대문 쪽에서 나는가 싶으면, 옆집과 붙은 벽 너머에서 났죠. 잠깐 들리는가 싶으면 금방 사그라지어 종잡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날이 갈수록 소리는 좀 더 빈번하게 들리고, 좀 더 커졌어요.

그리고 좀 더 가까이에서 들렸죠.

소리들은…… 먹이를 포위하고 야금야금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육식동물 떼 같았어요. 결코 서두르거나, 확 달려드는 조급함도 없이 점점 강도와 빈도수를 올려가며 집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죠.

소리들이 마당까지 기어들 즈음 저는 무척 불안해졌어요.

집안 식구들 어느 누구 하나 그 소리들을 들은 사람이 없었거든요. 아무에게도 안 들리는, 아니 아무도 못 듣는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불안하고 무서웠죠. 그런 기분 아시죠? 모두가 티브이를 보고 있는 대낮에 저 혼자 낮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기분. 식구들은 웃고 떠드는데, 그걸 다 들으면서도 몸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그 무력감과 두려움. 소리들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런 기분이 점점 농도를 더해갔어요. 그래서 가위눌린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려 애쓰듯, 소용없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소리들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죠.

물론 반응은 한결 같았어요. 우리 새끼가 귀가 다시 들리려나 보다, 남들한테 안 들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걸 보니…… 뭐 그런 정도였죠. 아무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하지만 소리들은 분명 있었어요. 그 날 밤 저는 분명히 들었어요. 식구들은 모두 세계타이틀이 걸린 권투를 보고 있었고, 저는 불안한 마음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그 소리들이 언제 나타날 지에 쏠려 있었죠. 그 날 경기가 아마 장정구의 타이틀 매치였을 거예요. 구라모치 다다시라는 일본 선수를 맞아 시쳇말로 소나기 펀치를 퍼붓고 있었고, 피가 튀고 눈두덩이 부어오른 구라모치 다다시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과 비례해 부모님들도 열광하고 있었어요.

물론 귀가 먹은 저에게 그 모든 광경은 그저 소리를 제거한 무성영화처럼 보일 뿐이었죠. 다만, 귀가 먹게 되면 다른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예민해진 후각이 부모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물적인 공격성을 짙은 냄새로 감지하고 있었죠. 그 때 방문 너머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어요. 돌아보니, 방문은 그대로 닫혀 있더군요. 소리는 멎어 있었고요. 저는 한동안 방문을 바라보다 다시 티브이로 시선을 옮겼어요. 한데 이번에는 천장에서 소리가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었어요. 천장을 올려다보았을 때는 이미 소리는 사라졌더군요. 그렇게 식구들이 권투 경기에 신경이 쏠려 있는 동안 소리들은 슬쩍 방문을 넘어왔다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도 하고, 벽면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금 사라지길 반복했어요.

분명한 소리들이었어요.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느낌이 왔어요.

일반적인 소리와는 관계없는 종류의 것들이라는. 그들……이라고 표현하면 웃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들’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떼 지어 몰려다니는 육식동물들을 연상시켰어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쾌하고, 굉장히 소름끼치는, 게다가 다분히 공격적인 기미까지 느껴지는, 그래서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었거든요. 그 소리들만 들으면 소변이 마려웠어요. 정확히는 오금이 저려오는 거였죠.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귀를 막아도 들렸어요. 그렇게 그들은 살아 있는 육식동물 떼처럼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죠.

마침내 그들이 방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식구들 주변을 빙빙 맴돌기 시작했어요. 나에게 다가와 한동안 뭔가를 살피는 듯 맴돌더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주변을 차례로 맴돌았어요. 저는 꼼짝도 못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할머니 주변을 감싸고 맴돌기 시작했어요. 슬그머니 할머니의 등 뒤에 나타났다가 할머니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기도 했죠. 저는 조심스레 다가가 할머니께 그 사실을 귓속말로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제가 안쓰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어요. 저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목을 또 그들이 스쳐지나갔어요.

할머니가 앓아누우신 건 그 다음날 아침부터였어요. 모두들 노환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그들 때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당시 할머니 방은 벽 하나를 두고 제 방과 맞붙어 있었는데, 그들이 연신 할머니 방에서 들려왔거든요. 점점 그들은 기세가 거세어졌고, 어느 땐 육식동물들이 먹이의 신경을 공포심으로 마비시키기 위해 내지르는 듯한 굉음도 들려왔어요. 저는 벽 너머의 그들 때문에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 있는 할머니께 가서 뭔가를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저는 사실 그들이 나에게도 옮아 붙을까봐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죠.

어떨 때 그들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냈어요.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하고, 여러 명이 혼잣말을 중얼대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실체가 도대체 뭔지, 그들이 왜 나타난 건지, 그들의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날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 가는 것만은 분명했죠. 부모님이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실 때에도 그들은 집요하게 할머니의 등에 붙어 와글거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부모님이 제사 때문에 집을 비운 날 밤 절정에 달했어요.

그 날 집에는 저와 할머니뿐이었어요.

할머니는 방에 누워 계셨고, 저는 그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제 방에 웅크리고 있었어요. 겁이 나서 부모님께 따라가겠다고 졸라댔지만, 부모님은 한사코 혹시 모르니, 너는 남아서 할머니를 돌봐드려야 한다면서 떼어놓고 가셨어요.

그들은 점점 커졌어요.
저는 귀를 감싸 쥐고 일어나 앉았어요.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았어요.
별안간 그동안 들려왔던 모든 소리들이 뒤엉키며 할머니 방에서 소용돌이쳤어요.
어느 순간에 그들은 육식동물들이 사냥한 먹이의 육질을 날카로운 이빨로 찢어내는 소리도 냈어요.
저는 귀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어요.

그들이 귀청을 찢을 듯 굉음을 내던 순간,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뻥!
예, 바로 그 날 형의 머리가 터지던 순간 들려왔던 그 소리였죠.
그리고 그들은 사라졌어요.

벽에 귀를 대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예전의 ‘조용히’ 상태 그대로였죠.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뭔가 일이 터진 것만은 분명했어요. 저는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나갔어요. 그리고 할머니의 방 방문 앞에 섰어요. 방문 앞에 서긴 했는데, 도저히 그 문을 열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방문 너머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는지, 할머니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이 나서요. 제가 몸을 떨고 있다는 것도 용기 내어 손을 방문 손잡이에 갖다 대다 부들거리는 제 손을 보고서야 알았죠. 저는 심호흡을 한번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의 방문 손잡이를 잡았어요. 차가웠어요. 팔뚝에 소름이 돋았죠.

이를 악물고 저는 할머니 방문을 열었어요.

할머니의 방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방은 온통 피바다였고, 그 날 형의 머리처럼 터져 버린 할머니의 머리가 눈에 들어올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이었죠. 정작 제 눈에 들어온 건 눈을 감고 누워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어요. 한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입을 쩍 벌리고 계셨어요. 얼굴에 혈색도 돌지 않더군요. 창백하기보단 푸르스름했어요.

‘할머니.’

불러도 할머니는 눈을 뜨지 않았어요. 왜 그랬는지, 저는 할머니가 눈을 뜨지 않기를 빌었어요. 할머니가 눈을 뜨면 오히려 저한테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았거든요.

‘할머니.’

다가가서 어깨를 살며시 흔들며 불러보았지만 마찬가지였어요. 할머니는 숨을 쉬지 않으셨어요. 어디선가 본대로 코에 손을 대어보고, 맥도 짚어봤지만, 숨결도 맥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신 거였어요.

상을 치르면서 어른들은 호상(好喪)이라고들 하더군요. 하긴 그렇죠. 내내 정정하시다 며칠 앓고 조용히 돌아가셨으니까요. 물론 제가 겪은 바로는 전혀 아니었지만요. 그 때부터 저는 그들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어요. 환청도 아니었고, 귀가 다시 들리려는 징후도 아니었죠. 그들은 그저 저한테만 들리는 사람 잡는 소리였어요. 그 새끼들이 어디서 오고, 왜 저한테만 들리고, 왜 사람 목숨을 뜯어먹는지 저는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랄 맞은 그 소리들이 안 들리는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날 이후로는 더 자주, 더 크게 들렸죠.”

다음 이야기
4. 귀 (3) 보기



유령의 공포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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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자정)


Posted by Jon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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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머나 2008/01/21 23:40

    글이 너무 무서워서 졸다가 홀딱깸 ㅡ_ㅡ

  2. 크로키 2008/01/22 14:02

    시리즈 중에 현재 최곱니다 !!!

  3. 재미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읽는 재미도 좋은거 같아요

  4. 너무 재밌어서 정주행중..^^;

  5. 진짜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