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액션 히어로의 탄생
이제 1편에 불과하지만 007시리즈를 위협할 정도의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스파이 액션 영화가 탄생했다. 더그 라이만 감독의 <본 아이덴티티>는 최근 몇 년 동안 쏟아져 나왔던 할리우드의 그 어떤 스파이 액션 영화들보다 강렬하다. 탁월한 액션과 서스펜스로 충만한 추격 장면,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 인상적인 로케이션 촬영이 주는 뛰어난 풍광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한 남자가 정신을 잃은 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다. 근처를 지나던 어선에 의해 구조된 남자는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몸속에서 나온 스위스 은행의 계좌번호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은행 비밀구좌에서 많은 돈과 위조 여권들을 찾은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제이슨 본임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누군가로부터 추적을 당하게 된다. 그가 잃어버린 과거는 어떤 것이었을까?
로버트 러들럼의 3부작 소설의 첫 번째 작품을 영화화한 <본 아이덴티티>는 원작의 뼈대만 가져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로버트의 소설은 리차드 챔벌레인 주연의 <저격자>를 통해서(한때 반드시 봐야할 숨어있는 비디오로 자주 거론이 되었던 그 영화다) 이미 한 차례 TV 영화로 만들어진 전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저격자>의 리메이크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특히 <저격자>의 경우 구식 스파이 영화의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이번 <본 아이덴티티>는 그런 전형성을 벗어난 세련되고 새로운 느낌이 강하다.
<본 아이덴티티>의 성공은 세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억을 상실한 스파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스파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영화의 기본인 이야기가 주는 매력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본 아이덴티티>는 이를 충족시키고 있다. 두 번째는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식상한 요리가 아닌 새로운 맛과 스타일을 만들어낸 더그 라이만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력을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을 상실한 스파이 제이슨 본을 기대 이상의 열연으로 소화한 맷 데이먼의 존재다. 사실상 그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더그 라이만의 연출력은 특히 액션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007 시리즈처럼 과장된 액션과 큰 스케일을 추구하기 보다는 <본 아이덴티티>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액션 장면들을 담아낸다. 격투는 불필요한 동작을 생략한 채 프로페셔널답게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탄성을 자아내는 제이슨 본의 경이적 격투 능력은 영화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대단히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특히 파리에 있는 제이슨 본의 집에서 벌어지는 1:1 대결은 <본 아이덴티티> 액션의 백미다. 여기에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서스펜스 넘치는 추격 장면, 설득력 있게 진행되는 로맨스가 딱딱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본 아이덴티티>는 미끈하게 잘 빠진 상업영화의 모델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군더더기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액션의 조화와 타이밍이 절묘하게 배치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성공적인 부분은 첫 번째 영화임에도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를 관객의 뇌리에 분명하게 각인을 시켰다는 점이다. <본 아이덴티티>는 자신을 쫓는 적들을 처리하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3부작의 1편이라는 점에서 제이슨 본의 운명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것이 2편 <본 슈프리머시>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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