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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2007)

리뷰/드라마 2007/09/1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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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니나노니나노 놀다가 간경변에 걸린 서울 남자가 요양원에 들어와 8년 동안 환자 겸 스탭으로 일하고 있는 폐농양 환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요양원에서 나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병이 나은 남자는 여자와 시골 생활이 지겨워지죠. 그는 여자를 걷어차고 가버리지만 결국 자신이 굴러들어온 복을 얼마나 확실하게 걷어찼는지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으아, 어쩜 이리 이야기가 뻔하단 말입니까?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기승전결이 다 나왔습니다!

파프리카 원래 허진호 영화 줄거리가 좀 뻔하잖아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한부 연애담이고, <봄날은 간다>는 절대 사랑을 추구하다 실연당한 남자의 신세 한탄이고, <외출>은 바람 핀 배우자의 애인의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꽈배기 커플 이야기고. 다들 구닥다리 연애소설에서 줄거리를 따온 것 같지요.

듀나 그래도 이전 영화들엔 분명한 선이 있었죠. 허진호의 영화들은 대부분 대비가 주는 효과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설정은 뻔하고 진부하죠. 하지만 캐릭터나 대사, 스토리텔링은 그 진부함을 노골적으로 외면합니다. 그 때문에 허진호의 멜로드라마는 (특히 한국 영화계에서는) 튀어 보이죠. 만약 허진호가 노골적인 멜로드라마의 공식으로만 영화를 만들었거나 순수하게 사실적인 영화만 만들었다면 이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개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파프리카 <행복>을 노골적인 멜로드라마의 공식으로만 짜여진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 영화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허진호 영화인 <봄날은 간다>와 질감 면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외출>이 노골적인 스토이시즘으로 지지리궁상 멜로드라마를 통제하려 한다면, <행복>은 훨씬 열려있습니다. 결말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는 이야기인데도 주인공들이 접할 수 있는 온갖 삶의 자잘한 측면들을 다 커버하지요.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인데도, <행복>은 허진호 영화들 중 유머감각이 가장 풍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의 의지도 뚜렷한데다가 훨씬 폼을 덜 잡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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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허진호 영화들 중 가장 솔직한 작품이라는 점도 지적해야겠군요. 지금까지 허진호의 남자주인공들은 조금씩 소독되어 있었고 탈색되어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이고 피해자이고 남에게 나쁜 일은 거의 안 하고 말씨까지도 얌전하고 곱죠. 이 조용하게 잦아드는 듯한 캐릭터 묘사는 분명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제 남자들은 이보다 폭이 넓기 마련이죠. 더 야비하고 더 이기적이고 더 뻔뻔하며 더 말이 거칠고 결정적으로 늘 약자로만 살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이 영화의 영수에 가깝죠.

파프리카 그에 비하면 은희는 정통적인 비극적 여자 주인공에 가깝지요? 위엄있고 용감한 불치병 환자지만 사랑의 행복과 좌절을 모두 겪은 뒤 꺾인 꽃처럼 조용히 스러져 가는...

듀나 에헴... 사실, 영수도 그만큼이나 정통적이죠. 비극적인 여자주인공이 그처럼 아름답게 죽어가려면 온갖 못된 짓을 저질러 여자주인공에게 상처를 주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어리석은 남자주인공이 필수적입니다. 전 이게 일종의 여성 관객들을 위한 소망성취 판타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절대사랑이나 비극적 사랑의 완성 따위가 아니라 이런 거죠. "그래, 날 떠나서 사는 게 그렇게 좋더냐! 나 죽은 다음에 평생 죄책감 느끼며 오래 오래 살아랏!" 이건 <못말리는 유모>의 프랜 목소리로 읊어야 제 맛이 나는데.

파프리카 전 영화를 보면서 자꾸 <잃어버린 지평선>이 생각났어요. 영수는 샹그릴라의 원주민 처녀와 눈이 맞은 유럽인 여행객이에요. 여행객은 그 처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도 없어요. 샹그릴라 밖으로 나가자마자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죽어버릴 테니까요. 그렇다고 처녀와 함께 샹그릴라에 그냥 머물자니 지루해 미칠 지경이네요. 건강엔 좋을지 몰라도 재미가 없거든요.

듀나 영수의 그 심정 이해하죠. 저도 그런 시골 동네에서는 일주일도 견뎌내지 못하는 걸요. 영수는 거기서 1년이나 살았어요. 그 정도면 대단하지요. 병의 협박과 사랑의 힘 때문이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애가 찌질하다는 점은 바뀌지 않아요. 책임질 수 없는 걸 알면 시작도 하지 말거나 분명한 선을 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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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
사람이 그렇게 늘 이성적이지만은 않지요. 게다가 영수는 정말로 은희를 사랑했으니까요. 차라리 영수가 시골처녀 농락하는 도회지 건달이었다면 모두에게 일이 좋게 풀렸을 거예요. 근데 그게 아니잖아요. 전 처음부터 영수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위악적인 남자였던 것 같아요.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속내를 보호하기 위해 바람둥이 터프가이 흉내를 내며 살다가 정통으로 한 대 얻어맞고 뻗어버린 거예요.

듀나 그보다는 자기한테 늘 필요 이상의 벌을 주는 남자일 수도 있겠죠. 후반부에는 확실히 그랬어요. 저도 그런 경향이 있어서 좀 아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 쬐끄만 죄책감을 제대로 처리 못해 자학하다가 그것 때문에 괴로워져 또 자학하는 경향이 많죠. 영수는 처음부터 자존심이나 자긍심이 없어요. 그게 문제예요. 중간수준의 자존심만 있었어도 이 정도로 신세를 망치지는 않죠. 그랬다면 그렇게 바닥을 치는 대신 자기와 은희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실용적인 계획을 짰을 테니. 이건 정말 에너지 낭비고 감정 낭비예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인 세계에서는 비극적인 멜로드라마가 나올 수 없겠죠?

파프리카 그에 비하면 은희는 고고하기가 여왕과 같지요. 영수보고 떠나지 말라고 싹싹 비는 장면도 사실은 영화 전체를 보면 별로 민망하지 않아요. 그 전에 이미 영수가 바닥을 쳤는 걸요. 늘 은희는 영수보다 위에 있어요.

듀나 그게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의 장점인 것 같아요. 현재만을 사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만 충실하면 되죠. 하지만 남은 미래까지 한꺼번에 생각하는 사람들은 존재한 적도 없는 시간의 무게에 미리 치어버리죠. 찍!

파프리카 황정민이 서울 바람둥이고 임수정이 시골처녀인데, 배우만 보면 황정민이 더 시골스럽지 않아요? 임수정은 존재하는 거의 모든 촌각시 패션을 동원하고 나오는데, 그게 참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촌스럽게 보이지도 않아요. 폐농양으로 토악질을 해도 더러운 티는 전혀 안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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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은희의 입장에서 본 영화라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 캐스팅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어요. 황정민과 임수정은 모두 캐릭터와 스토리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아내고 있지요. 캐스팅 당시엔 삼촌과 조카라고 놀림도 받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아요. 아마 은희가 더 어른스러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파프리카 암만 생각해도 영수는 지지리궁상이란 말이에요.

듀나 대개 이런 입장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지지리궁상이죠. 영화의 결말이 통속의 극치를 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통속극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진실을 담고 있어요. 깊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사실적이죠. 대부분 사람들은 통속적인 상황에 말려들었을 때 그냥 통속극 주인공들처럼 행동해요. 영수의 행동은 진실되기 때문에 통속적이죠.

바로 이게 <행복>이라는 영화의 아이러니컬한 점이에요. 허진호는 <행복>을 통해 지금까지 그가 추구했던 심리적 사실주의의 정점에 도달했어요. 하지만 그 결과 그가 도착한 곳은 뻔하디 뻔한 통속 멜로드라마의 결말이었죠. 그럼 허진호는 이제 뭘 해야 하나요? 이미 통속 멜로드라마의 공식이 알아서 스스로를 끌어가고 있는데? (07/09/17)

기타등등

공효진이 연기한 수연은 정말 우정출연으로나 캐스팅이 가능한 역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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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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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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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똘이 2007/09/18 13:23

    임수정 베드신을 홍보전략으로 삼는듯.

  2. 듀나님.
    영화에 대한 논의나 허진호감독의 방식들을 말하는 것들은 거침없어 좋았지만.
    대부분의 남자가 영수라는 캐릭터같다는 논리는.
    마치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거나. 그것과 닮은 인물에게 피해를 보았거나하는.
    피해의식에 토할듯 뭉쳐있는 혀 같습니다.
    단정을 짓는 어투가 굉장해서 실소가 나오는 군요.
    탈색되고, 소독되다니요.
    성별에 대한 그런 말도 안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서는.
    영화나 문화를 말하시나요.
    대부분의 남자, 여자라는 말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성별에 따른 특색은 있더라도 그 안에 모르는 일들이 더 많은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지속적인 학습에 따른 문제이신가요?

  3. 늙은보이 2007/10/03 19:32

    영화적 해법은 재미있네요..^^ 하지만 이런 영화는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거죠. 누가누가 인물을 분석하려면 정신분석책을 보시구요. 전 보는 내내 마음 아프고 결국엔 눈물이 주루룩~~~~T___T .
    그럼으로 명연기를 펼친 배우들이나 참으로 맛깔나게 연출해준 감독님께 경의 과 감사의 한마디를 남겨요. "행복하세요~~!"

  4. 사오정 2007/10/05 19:18

    듀나님 신경 쓰지 마세요 행복 정말 재밌을거 같네요

  5. 위에 분.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마음대로 읽어서 칼집내는 건 신경안쓰이시고
    역으로 평론가의 글을 평하는 건 신경쓰일 일인가요?

  6. 곰님...
    듀나는 원래 그렇습니다. 좋게 말하면 솔직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한거죠.
    게다가 듀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면 '우린 당신의 재능을 사랑할 뿐이니 얼마든지 ...하게 막 쏴대주세요.'라는 뉘앙스의 추종자들이 드글거립니다. 추종자들의 글은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오죽하면 아이디가 사오정이겠습니까...
    전 듀나 추종자들은 우습고, 불편하지만 듀나의 원래 ...한 부분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까탈스럽고 뭔가 독특하기 마련이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