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 혹은 어느 자본가의 초상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사실 <미스터 브룩스>는 스릴러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 블랙 코미디다. 설마. 덱스터처럼 악당들을 죽이는 연쇄살인자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충동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을 코믹하게 그린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미스터 브룩스는 평범한 가장의 탈을 쓴 악인이고, 평범한 사람들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죽이는 살인자다. 그런데도 <미스터 브룩스>를 보고 있으면, 살인자인 브룩스에게 어쩐지 이끌리게 된다. 브룩스의 매력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에게서 풍기는 치명적인 냄새와는 전혀 다른 종류다. 야수같은 본능에서 느껴지는 매력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죄악을 냉절하게 수용하기에 느껴지는 이성적인 차가움이다.
사실 미스터 브룩스는 전혀 희극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는 지역 신문이나 잡지의 커버스토리에 등장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까지 둔 브룩스에게는 전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충동이 있다. 그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살의. 보통의 진지한 영화라면 당연히 브룩스의 내면을 파고들어갈 것이다. 뭔가 곡절이 있는 브룩스의 과거를 추적할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한니발조차도, <한니발 라이징>에서 기괴하면서도 터무니없고 지루한 과거를 보여준 것처럼. 그러나 <미스터 브룩스>는 그의 과거에 대해, 그의 내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충동만을 보여주고, 그가 행하는 판단과 행동만을 보여준다. 우리는 브룩스가 지금 하는 행동과 판단 그리고 고뇌만을 볼 뿐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미스터 브룩스가 성공한 사업가이며 냉혹한 살인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가로서 브룩스는 자신의 살의를 드러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브룩스는 잘 훈련된,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조직화하고 계산하는 철저한 사업가다. 그리고 브룩스는 살인을 할 때에도, 자신의 사업가적인 기질을 전면에 드러낸다. 보통의 연쇄살인범은 범행을 거듭할수록 기간이 짧아지고, 단서를 남기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범행을 더욱 드러내려고 의도한다. 자신만의 사인을 남기거나 더욱 거창한 의식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제력을 잃고 대부분은 자멸하게 된다. 그러나 브룩스는 언제나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한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총으로 즉사를 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 끝이다. 잠깐 사진을 보며 희열을 느낀 다음 모든 증거를 완벽하게 없애버린다. 브룩스는 자신의 범죄까지도 완벽하게 통제하는, 모든 면을 제어할 줄 하는 사업가다.
그러나 브룩스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살의의 충동이다. 그것을 부추기는 인물은 브룩스의 또 하나의 자아인 마샬이다. 브룩스는 이중인격을 가진 살인자인 셈인데, 마샬은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이중인격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인격이 분리되면, 대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르는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또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 그에게 모든 악을 떠맡게 하는 것이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는 것일 뿐, 자신의 의지는 아니라는 것. 그건 사실 도피이고, 망상에 빠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브룩스와 마샬의 관계는 좀 묘하다. 마샬이 살인을 부추긴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샬은 끊임없이 브룩스를 자극하고, 그가 살인을 행하도록 유도한다. 마샬이 브룩스의 어두운, 숨기고 싶은 내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브룩스와 마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들의 권력관계는 오히려 브룩스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샬이 부추기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브룩스다. 행동을 하는 것도 브룩스이고, 그 행동의 원칙이나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브룩스다. 브룩스에게 마샬은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브룩스에게는 자신의 살인에 대해 의논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자신의 살의를 대신 설명하고, 자신의 부담을 덜어줄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그렇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브룩스와 마샬의 대화는 농담에 가까워진다. 살의에 대한 잔인한 농담을, 그들은 낄낄거리며 주고받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샬의 비중도 줄어든다. 2년간 살인을 멈추고, 자신의 충동을 관리하는 동안에는 마샬의 목소리가 필요했지만 다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인자로서의 얼굴을 함께 경영해 가는 브룩스에게 마샬이란 존재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브룩스의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도 범행에 끼워달라는 스미스는 브룩스가 자신의 충동을 이해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경찰에 알리기는커녕 자신도 ‘살인’을 해보고 싶다는 스미스를 보면서, 브룩스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표면적으로는 절대로 자신의 범죄를 가족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의 의식일 뿐이다. 단란한 가정을 지키겠다는 가장의 원대한 목적 같은 것은, <미스터 브룩스>에서 단지 농담에 불과하다. 브룩스는 단지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행복한 가정, 훌륭한 회사 그리고 완벽한 살인까지, 브룩스의 욕망은 단 하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슈퍼맨’이 되는 것이다.
스미스가 알려준 것은 누구나에게 살의가 있다, 는 투의 잠언이 아니다. 조잡하고 비루한 스미스의 사고와 행동을 보면서 브룩스는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충동은 이런 인간과 다르다, 라고. 브룩스의 살의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나 찌질한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 같은 것이 아니다. 브룩스에게 살인은, 그가 완벽하게 관리하는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살의 역시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것이다.
브룩스의 정체를 모른 채, 연쇄살인범을 쫓는 여형사 앳우드는 사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크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미스터 브룩스>는 범죄를 둘러싼 심리전이나 추격전이 벌어지는 스릴러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앳우드는 브룩스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앳우드는 그저 브룩스의 장기판 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말일 뿐이다. 만약 소문처럼 <미스터 브룩스>가 3부작으로 구상되었다면 이후 앳우드는 브룩스를 쫓는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의 플롯과는 상관없이 앳우드라는 존재는 흥미롭다. 앳우드는 백만장자인 형사다. 돈이 넘쳐날 정도로 많으면서도 형사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고, 딸이었기에 부모에게 인정받았지 못했던 과거를 회복시키기 위한 일종의 인정투쟁이다. 어딘가 브룩스와도 비슷해 보인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이미 이루고도, 뭔가 채우지 못한 욕망 혹은 충동 때문에 어둠으로 스며드는 존재.
그러나 앳우드와 브룩스는 명백하게 다르다. 앳우드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을 뛰어다니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가 풀어야 할 것은 과거이지, 현재가 아니다. 브룩스가 고민하는 것은 단지 현재의 충동일 뿐이다. 과거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과거는 극복을 해야 할 대상이고, 극복을 하면 문제가 끝난다. 거기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브룩스는 앳우드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친히 전화까지 해 주게 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라는 충고다.
브룩스의 가장 큰 고민은 딸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인간만큼 통제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자식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학을 다니던 딸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학교를 그만두고 경영수업을 받겠다는 것 정도는 좋다. 문제는 그 딸이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브룩스는 보통의 아버지가 할 수 없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을 한다. 딸이 살인을 저지른 방식과 똑같이 또 하나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브룩스에게는 통상적인 양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딸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 정도는, 그저 단순한 업무처리일 뿐이다. 변호사를 산다던가, 증거조작을 한다던가 하는 방법보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확실한.
문제는 딸의 안전이 확보된 이후다. 브룩스는 딸이 자신을 살해하는 꿈을 꾼다. 마샬은 딸이 그의 회사를 물려받으려고 그를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당한 말이다. 과거에는 왕위 등의 권력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와 형제를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고, 지금도 소위 명문가나 재벌가에서 서로 죽이지만 않을 뿐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건 권력을 둘러싼 당연한 투쟁이다. 하지만 브룩스가 고민하는 것은 그런 일상적인 투쟁이 아니다. 브룩스는 자신의 살해 충동을 딸이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를 고민한다. 만약 그렇다면 아버지로서, 딸의 살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답은 하나일 것이다. 자신만큼 똑똑하지 않은 딸을 위해, 자신이 계획을 짜는 것이다.
브룩스는 살인의 충동을 이미 인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 히어로처럼 자신의 정체를 절대 드러내지 않고 안전하게 살인을 하는 것이다. 브룩스는 악인이지만, 영화 서두에 드러난 것처럼 막대한 양의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보통의 자본가들이 그러하듯이, 아마도 브룩스는 그런 방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미스터 브룩스는 자본가의 슈퍼히어로인 셈이다. 그런 미스터 브룩스를 보면서 숭배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반대로 그 가증스러움을 조롱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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