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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링>과 미국판 <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에 오리지널 <링>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활시위 비유를 썼었죠? 이번에도 그 비유를 재활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지 방향이 반대입니다. 고어 버빈스키의 리메이크 버전 <링>은 활시위가 상당히 굵은 영화니까 말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오리지널과 대충 같습니다. 저주받은 비디오 테이프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비디오 테이프를 본 주인공은 진상을 캐기 시작합니다. 무대가 시애틀로 옮겨졌고 링을 둘러싼 과거사가 바뀌었지만 기본 기둥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몇몇 장면들은 구도까지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더군요.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나가타 히데오는 몇몇 충격용 장면들만 빼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아주 단아하고 차분하게 유지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전체가 그 몇몇 충격용 장면을 위해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버빈스키는 영화 전체에 촘촘하게 긴장과 공포를 심어놓습니다. 보다 할리우드적이 된 것이죠. 나가타 히데오가 산문적으로 조용히 읊고 지나간 자리를 버빈스키는 피와 특수 효과를 떨구며 지나갑니다.

영화는 원작보다 더 논리적이 되었습니다. 현대전설을 캐던 주인공의 친척이 우연히도 비디오 테이프의 희생자라는 식의 우연 같은 것들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사건들에 대한 설명들도 더 늘어났어요.

버빈스키 버전은 오리지널이 다루었던 사건들을 미국식으로 옮겼습니다. 화산 폭발과 예언은 외딴 섬에서 몰살당한 말과 아동 학대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마라와 안나의 긴 검은 머리칼은 어쩔 수 없이 남겨두어야 했는데, 영화는 비디오 테이프의 과거사가 70년대에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우기면서 그걸 설명하고 있습니다. :-)

결과는 어떨까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누어 설명하기로 하죠.

우선 좋은 점부터. 버빈스키는 리메이크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나가타 히데오의 영화는 중요한 몇몇 장면들을 제외하면 좀 심심하죠. 버빈스키가 그 빈 자리를 자잘한 사건들과 암시들로 촘촘하게 채워서 리메이크 버전은 덜 지루합니다. 바뀐 과거사의 미스터리도 훨씬 입체적이고 흥미로워요. 바늘 끝으로 피부를 콕콕 찌르는 것과 같은 모던 고딕의 스타일도 계속 관객들을 자극하고요.

일본풍의 요소들을 미국식으로 번역하는 방식도 성공했습니다. 버빈스키는 일본식 비주얼을 모두 조심스럽게 아메리칸 고딕의 금욕적이고 침침한 느낌으로 옮겨놨는데, 그 결과가 썩 좋습니다.

몇몇 장치들은 업그레이드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리메이크 버전은 비디오 테이프라는 매체를 훨씬 전문적이고 세련되게 다룬 편입니다. 리메이크 버전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아동 학대 역시 관객들로부터 공포와 동정을 동시에 끌어낼만한 좋은 소재였어요.

나쁜 점. 아까 버빈스키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게 종종 지나쳤습니다. 이야기가 더 논리적이 된 건 좋은데, 덕택에 설명이 너무 많아서 장황해졌어요. 자잘한 액션들은 클라이맥스의 힘을 떨어뜨렸고 전체적으로 공포 영화의 힘도 약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죠. 원작에서 우린 사다코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그 무시무시한 눈이 효과적이었던 거죠. 하지만 리메이크 버전에서 우린 이미 드베이 체이스가 귀여운 얼굴을 드러내고 연기한 사마라를 봤습니다. 어느 정도 공포는 갉아먹고 시작할 수밖에 없죠.

아무리 능숙하게 번역했다고 해도, 여전히 일본풍의 스토리는 종종 미국식으로 전환된 다른 요소들과 어긋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유령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클라이맥스입니다. 사마라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동양식 처녀 귀신 이미지라 시애틀의 현대 아파트에서 벌어지니까 힘이 떨어집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꼭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안한 것도 있습니다. 왜 영화는 일본식 현대전설을 미국식 도시전설로 옮기면서 그 차이를 탐구하지 않았을까요? 버빈스키의 버전에서 도시전설은 어쩔 수 없이 다루어야 할 소재 이상은 아닙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버빈스키 버전은 꽤 성공적인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자기 스타일도 버리지 않았으니 상당히 실속있는 작품인 셈이죠. 지나치게 말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더 그럴싸한 영화가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03/01/21)

기타등등

1. 사마라를 연기한 드베이 체이스는 <릴로와 스티치>의 릴로입니다.

2. 사마라의 병원 테이프를 보면서 자꾸 지니가 떠오르더군요. 의도적이었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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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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