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수 네즈라> 홍보용 합성사진
'가메라' 이전에 '네즈라'가 있었다!
특촬영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괴수영화야말로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닌 특촬의 하위 장르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괴수영화를 말할 때, 토호 영화사의 고지라 시리즈는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1954년 공개된 <고지라>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인술영화나 전쟁영화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트릭 기법이나 화면 합성 등을 일컫는 하나의 공정이었던 ‘특수촬영’은 그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 되어 ‘특촬’이라는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해 갔다. 따라서 <고지라>는 일본 최초의 본격 거대괴수영화인 동시에 ‘특촬영화’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후 토호는 1960년대 초반부터 ‘괴수왕’이라는 아명을 지닌 고지라를 내세워 시리즈를 전개한다. 1962년 공개한 고지라 시리즈 제3탄 <킹콩 대 고지라>가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64년에는 제4탄과 제5탄 <모스라 대 고지라>와 <3대 괴수 지구 최대의 결전>을 연속 발표하여 <킹콩 대 고지라>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다. 토호는 당시 흥행 장르로 완전히 정착한 특촬을 전략적으로 추진하였으며, 괴수영화의 경우 1년에 2편씩 제작하는 양산 체제를 구축한다. 1960년대는 사실상 일본 괴수영화의 전성기였다.
이 고지라 시리즈에 필적하는 지명도를 자랑하는 것이 경쟁사 다이에이의 가메라 시리즈이다. 다이에이는 토호보다 11년이나 늦은 1965년에야 자사의 첫 본격 괴수영화인 <대괴수 가메라>를 내놓았다. 물론, 다이에이는 그 전에도 특촬영화를 만들었다. 투명인간 시리즈로 대표되는 괴기영화나 <석가>, <진시황제>와 같은 시대극, 화가 겸 조각가 오카모토 타로의 디자인과 뛰어난 색채감각을 잘 살린 SF영화 <우주인 토쿄에 나타나다> 등이 다이에이 특촬영화의 대표작이었다. 1960년대 초반 토호 괴수영화가 연이은 히트를 기록하자, 경쟁심을 불태우게 된 다이에이는 고지라에 대응할 독자적인 괴수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나는 거북 괴수'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지극히 한정된 자료를 통해서만 그 얼개를 짐작할 수 있는, ‘가메라의 원점’에 해당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대군수 네즈라>였다.
모터로 작동되는 쥐 모형으로 테스트 촬영 중인 특촬반 스탭들
다이에이 괴수영화의 첫 기획안은 1963년의 <대해수 다고라>였다. <풍속 75미터> 등의 스펙터클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맡았던 츠키지 요네사부로가 제출한 것으로, 도중 <대군수 네즈라>로 이름이 바뀐다. 이 새로운 기획안은 황소만한 크기로 거대화된 쥐떼가 토쿄를 습격한다는 내용으로, 고지라와 같은 특정한 괴수 캐릭터가 등장하는 정통 거대괴수영화라기보다는 동물 패닉영화에 가까웠다. ‘네즈라(ネズラ)’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쥐’를 뜻하는 ‘네즈미(ネズミ)’에서 따온 것이다.
현존하는 각본에 따르면 <대군수 네즈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토쿄 근해의 한 섬에서 우주개발에 사용될 우주식이 개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식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폐기되고, 섬에 살던 쥐떼가 그것을 먹고 거대화한다. 인육의 맛을 본 쥐떼, 즉 ‘네즈라’는 바다를 건너 토쿄만에 상륙, 인간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다이에이는 이 기획안을 1964년 정월영화로 결정하고, 1963년 가을 스탭을 꾸려 제작에 들어갔다. 특촬감독은 츠키지 요네사부로가, 본편 드라마 감독은 <투명인간과 파리사나이>(1957년)와 다수의 전쟁영화를 연출했던 무라야마 미츠오가 맡았다. 츠키지 감독이 이끄는 특촬반은 거대한 쥐를 스크린에서 효과적으로 묘사할 방법을 개발하기 위한 테스트 촬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터로 작동하는 쥐의 모형을 만들었는데, 당시의 기술로는 만족스러운 움직임을 연출할 수 없었다. 모형과 도시 등의 배경을 블루 백으로 합성하는 기술 역시 박력 있는 화면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화면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츠키지 감독은 결국 진짜 쥐(!)를 찍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츠키지 특촬감독이 쥐의 거대감을 가늠하기 위해 모형 집 위에 쥐를 올려놓고 있다
츠키지 감독의 결단으로 특촬반은 살아있는 쥐를 어렵사리 모아 촬영장에 데려온다. 그러나 이 작은 동물들은 처음부터 골칫거리 그 자체였다. 우선, 너무나 당연하게도 촬영을 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쥐는 제작진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게다가 야행성 동물이어서 촬영을 위해 조명을 켜자 어두운 곳으로 우루루 숨어들어가기 일쑤였다. 촬영 팀은 어쩔 수 없이 주위를 어둡게 만든 뒤 비싼 고감도 필름을 들여와 보조 조명으로 작업해야 했다. 심지어는 쥐를 일정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전기 쇼크 장치나 구서용 독가스와 같은 치명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동안 쥐들과 씨름하던 특촬반이 어느 정도 통제하는 요령을 익혔다고 판단한 순간,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잡식성인 쥐들이 서로를 잡아먹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츠키지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100마리를 들여놓고 이틀이 지나면 뼈만 남고 다 합쳐 20마리 정도만 살아있을 정도였다니 가히 그 참상을 짐작할 만하다. 촬영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쥐의 수가 줄어들자, 다이에이 본사는 쥐를 대량으로 매입한다는 광고를 내기에 이르렀다. 새로 들여온 쥐는 트럭에 실어 촬영장으로 공수했는데, 여기서 다이에이는 트럭 옆에 ‘대군수 네즈라 호송중’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교묘히 홍보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간신히 쥐를 채워놓자, 이번에는 특유의 왕성한 번식력으로 쥐들이 마구 새끼를 낳아 골치를 썩였다. 이어 제작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위생 문제였다. 한정된 장소에 쥐떼가 밀집하자 진드기가 들끓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근 주민의 민원이 날아들었고, 보건소에 의해 전염병 발생 우려 등의 민감한 사안이 제기되면서 <대군수 네즈라>는 조합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결국 정상적인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다이에이는 ‘제작 중지’라는 극약처방으로 사태를 수습하기에 이른다. 이미 3,000피트 이상의 필름을 촬영해놓은 상태였다.
도로 미니어처 세트 위를 달려가는 쥐들
살아있는 쥐떼를 이용하여 패닉 스펙터클을 연출한다는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도 획기적인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지극히 무모한 시도이기도 했다. 통제가 어려운 동물 집단을 별다른 트레이닝 없이 풀어놓는다는 계획 자체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면밀히 통제해야 하는 영화라는 매체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 오직 박력 있는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 작업에 도전했던 제작진의 열의만큼은 높이 살만하지 않을까. 비록 <대군수 네즈라>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듬해인 1965년 다이에이는 마침내 그들만의 거대 괴수 캐릭터인 ‘가메라’를 탄생시키면서 주목을 받는다. 츠키지 감독이 특촬을 맡고 유아사 노리아키 감독이 본편 드라마를 담당한 <대괴수 가메라>가 개봉했던 것이다. 이후 가메라는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고지라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1960년대 중후반 불어 닥친 ‘괴수 붐’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니, <대군수 네즈라>의 시행착오는 나름대로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촬영 당시 녹음해 둔 쥐의 울음소리는 음향효과를 추가하여 가메라 시리즈 제2탄인 <대괴수결전 가메라 대 바르곤>에서 박쥐 울음소리로 유용되었고, 테스트에 쓰였던 쥐 모양의 수트(괴수 옷)는 개수되어 재활용되는 등 <대군수 네즈라>의 유산은 가메라 시리즈 제작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대군수 네즈라>는 당시 촬영된 필름이 유실되어 현재 일부 문헌과 스틸 사진, 그리고 1999년에 발매된 LD 박스 <다이에이 특촬 스펙터클 박스>(절판)에 수록된 부록 등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환상의 작품’이 된 것이다.
쥐의 털 빛깔이 개체별로 달라 스탭들이 일일이 같은 색으로 염색해야 했다
사족
2002년에는 <대군수 네즈라>와 유사한 설정의 <최강수 탄생 네즈라>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다. 실험용 쥐가 돌연변이한 괴물이 등장한다. 타가와 칸타 감독, 류 다이스케, 쿠보타 요시유키, 사쿠라바 아츠코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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