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주인공 에드워드 키나스턴은 실존인물입니다. 왕정복고 이후 인기 있던 연극배우였지요. 경력 초기에는 여성 역할로 인기를 끌었고 찰스 2세에 의해 여자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게 허락되고 남자배우의 여성 역할이 금지된 뒤에도 잘 나갔습니다. 잘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죠. 원래 여성 역할이란 한철 장사이고, 그 전에 남자 역할을 안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다시 말해, <스테이지 뷰티>에 나오는 네드 키나스턴은 거의 전적으로 허구의 인물이란 말입니다. 실제 키나스턴이 여성 역할을 그만 둔 건 그가 겨우 스무 살 때였습니다. 그가 여자배우들을 반대했다는 증거도 없고 그 동안 슬럼프에 빠진 적도 없었지요. 따지고 보면 <스테이지 뷰티>가 그린 영국 무대 사회 자체가 어느 정도 허구입니다. 성 역할과 페미니즘, 예술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현대 작가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공간이죠.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허구로 심어놓은 인물은 나중에 마가렛 휴즈라는 이름으로 배우가 된 머라이어라는 인물입니다. 영화가 그리는 것도 네드 키나스턴과 머라이어의 관계죠. 머라이어는 처음엔 키나스턴이 일하는 극단의 하녀였다가 술집에서 불법으로 <오델로>를 공연하고 나중에 찰스 2세가 여자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걸 허락하자 독립해서 스타가 됩니다. 일자리를 잃고 정체성 고민에 시달리는 키나스턴은 그런 머라이어를 증오하고 멸시하지만 머라이어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고 숭배하며 모방하죠. 영화는 키나스턴을 버킹엄 공작의 숨겨놓은 남자친구인 바이섹슈얼로 그려놓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노골적인 패그해그 판타지 분위기를 풍깁니다.
<스테이지 뷰티>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관객들의 시선을 꾸준히 끌만한 장치들이 가득하죠. 여장 남자배우라는 설정, 새뮤얼 핍스나 넬 귄과 같은 실존 인물들의 이식, 남자들의 세계에 뛰어든 여성 주인공의 모험, 적수이면서 연인이고 사제관계이기도 한 두 주인공의 복잡 미묘한 관계... 제시되는 문제들은 묵직하고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이 재료들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뽑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공들을 가지고 저글링을 한다는 느낌이에요.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은 모두 따로 독립해 각자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만큼 큽니다. 그 때문에 종종 이들은 충돌하면서 이야기를 끊어먹어요. 종종 캐릭터들의 역할이 시퀀스마다 바뀌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죠. 주제들이 너무 무겁다보니 이야기가 종종 생기를 잃기도 하고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영화의 후반은 지나치게 완벽한 타협 때문에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두 주연배우들 중에는 클레어 데인즈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머라이어는 이 배우의 장점이 잘 살아나는 역할이에요. 격정적이고 섬세하며 자신감과 자신감 부족 사이에서 시소처럼 갈등하는 인물이죠. 빌리 크루덥은 배우와 남성으로서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부분에서는 좋습니다. 하지만 데스데모나와 오델로로 분한 그의 모습은 그렇게 와닿지가 않더군요. (07/09/14)
기타등등
이 영화 찍고 크루덥과 데인즈는 한 동안 사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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