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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문학의 미래를 열어간다

한국적인 공포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서구의 뱀파이어나 악마도 아니고, 일본의 원귀도 아닌 우리만의,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란 과연 무엇일까? 한국의 공포영화를 보면, 아직은 우리의 공포를 분명하게 찾아내지 못했다. 사회의 폭력을 여고라는 공간을 통해 절묘하게 끄집어낸 <여고괴담>이나 근대화의 망령을 섬뜩하게 담아낸 <소름> 등 몇몇 영화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절실하게 느낄법한 현실적인 공포의 흔적을 드러냈을 뿐이다. 나머지는 거의 <링>에서 나온 사다코를 재탕했고.

공포소설에서도 아직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괴담 모음집인 <어느 날 갑자기>와 공포 판타지라고 할 <퇴마록>이 슬쩍 우리들이 직감하는 공포의 한 단면을 슬쩍 건드렸을 뿐이다. 그 후 이종호의 <분신사바>와 <이프>, 김종일의 <몸> 그리고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 우리 주변의 공포가 무엇인지 파고 든 작은 예일 뿐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어디에서 공포가 도래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의 공포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귀신을 만나면 인종과 민족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포를 느낄 텐데, 과연 우리만의 공포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공포는 만국 공통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초적인 공포에 한한다. 귀신을 만나면 누구나 무서운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그저 괴담일 뿐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고, 잔인한 사지절단은 심지어 정육점에서도 늘 벌어지는 일이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괴담을 모으고, 단지 그것을 전파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공포는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공포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시공간 속에서 다른 형상으로 도래한다. 아무리 태초부터 존재했던 어둠에 대한 공포일지라도, 지금 우리에게는 또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침입하는 것이다. 과거의 민담이나 설화가 도시괴담이 되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와 핸드폰 등이 언제든지 공포의 도구로 탈바꿈할 수 있다. <링>의 비디오가 그렇고, <폰>의 핸드폰이 그렇듯이.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공포의 구체적인 형상은 바뀌기 마련이다. 공포는 비일상적인 현상이지만,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에서 만나는 공포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에 실린 단편들은 제각각 우리가 일상과 비일상에서 만나는 공포의 형상을 보여준다. 우선 사람들의 완고한 상식을 무너뜨리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침입이 있다. 김종일의 <벽>은 아파트에 존재하는 ‘무엇’을 그린다. 소설가인 나와 남편은 결혼 6년 만에 겨우 내 집 마련을 한다. 하지만 24평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부터 예의 없는 위층 식구들 때문에 짜증이 난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물건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건망증이 아니라, 분명히 잠시 놓아둔 것들조차 사라지자 엉뚱하게도 부부는 서로를 의심한다. 그리고 극심해지는 분노는 타인을 향하게 된다. 결국 남편도, 뱃속의 아이조차 사라져 가는 초자연적인 상황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대체 무엇에 공명하여 벽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내 집까지 마련하고 확고부동해 보이던 가정의 행복은, 부부가 모두 무언가에 공명하면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결국은 그들 자신마저 사라져버린다. 공명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거대한 뭔가에 자신의 의식과 행동마저 의탁해버리는 수동적이며 비주체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김종일은 <몸>에서 뭔가 낯선 존재로 변해버리는 우리들의 친숙하면서도 필수적인 몸에 대해 말했다. 그것이 <벽>에서는 몸이 변하는 대신, 송두리째 자신을 어딘가로 공명시켜 빨려 들어가는 사라지는 기묘한 상황으로 바뀐다. 김종일이 그려내는 ‘변이’는 일관되게 독자를 매혹시킨다.

장은호의 <캠코더>는 흔히 듣던 병원의 괴담을 떠올리게 한다. 병실이나 복도에서 보았다는 저승사자, 혹은 죽음의 기운 같은 것들. 언제나 죽음이 존재하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죽음의 형상을 만나는 것은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언제나 캠코더로 병원 이곳저곳을 찍던 소년 해성은, 병원의 환자와 식구들에게 늘 원망을 산다. 해성이 캠코더로 찍으면 그 사람이 곧 죽는다는 것이다. 해성은 단지 검은 무엇인가를 찍었고, 그것이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죽음이 오는가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해성의 캠코더 찍기에 대해서만 분노한다.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죽음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상황을 오로지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하는 것이다. 결국 캠코더를 통해서 죽음을 보는 이들은, 죽음을 자신의 논리 속에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이들에게 배척당한다. 그것이 바로 합리성으로 위장된 사회에서, 비합리적인 진실을 보는 자들의 운명이다.

한국 공포문학의 선두주자인 이종호의 <폭설>은 폐쇄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공포를 보여준다. 일단 <폭설>에서 두드러진 것은, 공포소설의 베테랑답게 탁월한 성취를 보이는 뛰어난 캐릭터와 심리묘사다. 공포란 것은 단지 설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 공포영화가 가장 기교가 필요한 장르라고 말하는 것은, 순간의 충격이 아니라 진짜 공포를 느끼기 위해서는 차곡차곡 쌓아가는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고, 드러나는 상황 속에서 캐릭터들을 충돌시키면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느낌들을 절묘하게 다루어야만 공포가 점층적으로 쌓여간다. 소설도 영화와 마찬가지다. 무서운 상황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 무서운 상황을 만나는 사람들의 뒤틀리는 내면에서 진짜 공포가 느껴지게 된다.

설산에서 조난당한 주호는 겨우 산장을 찾게 되고, 이미 산장에 있던 세 남자와 한 여자를 만난다. 그들은 각자 다른 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엇인가가, 알 수 없는 존재가 누군가의 귀에 속삭이면 그는 그 말을 따르게 된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건 조난자의 원혼일 수도 있고, 산속에 존재하는 요괴일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가장 절박한 상황에 몰렸을 때, 그들 각자가 택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는 생각까지 품게 된다. 그것은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동의하는 생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선,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후에, 비로소 알게 된다. 그들은 그 산장에 갇힌 존재임을. <폭설>의 산장은 곧 이 사회의 은유로 다가온다. 우리는 날마다 낮은 속삭임을 듣고 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이기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어 등등 무한경쟁지상주의의 소름끼치는 속삭임을.

원혼이나 악령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인간은 어째서 인간을, 그토록 괴롭히는 것일까. <레드 크리스마스>는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구임대 아파트인 보라 아파트와 최고급 하이빌레 아파트가 한 동네에 붙어 있다. 이미 계급간의 이동이 거의 힘들어진 한국사회에서, 하층계급의 분노를 그리는 <레드 크리스마스>는 충분히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못 사는 집의 불량한 아이들이 잘 사는 아이를 괴롭혔지만, 지금은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오히려 폭력의 주모자가 된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자신들의 아래에 있는 것들을 짓밟는다. 하이빌레 아파트의 아이들은 보라아파트의 아이들, 길 잃은 개, 독거노인 등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런데 노인이 찾아가 아이들의 만행을 호소해도, 부모와 학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공부만 잘 하면 되지, 그 밖에는 중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학교도, 부모도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부당한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독거노인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테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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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

황희의 <벽곰팡이> 역시 약자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 간 지 3년째인 수미의 가족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약자다. 유색인종이고, 영어도 잘 못하고, 가진 것도 없다. 아파트에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기침을 한다. 그러나 관리실에서는 수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에 간 아이들도 차별을 받기 시작한다.

<벽곰팡이>는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악몽이 점점 상승되는 상황을 그려낸다. 다만 <벽곰팡이>는 현실의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다. 현실의 나열일 뿐 하나로 모아지지는 못한다. 유색인종을 증오하는 살인마는 그저 멍청하고 나약한 백인일 뿐이다. 그는 가해자이지만, 진정한 증오와 분노의 원인은 아니다. <벽곰팡이>는 공포의 근원을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결국 철저한 희생자로 내동댕이쳐지는 결말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최민호의 <길 위의 여자>는 공포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설정을 변주한다. 외딴 곳에서 헤매다가 낯선 사람을 만난다. 그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는 살인마였다. <길 위의 여자>는 영화의 클리셰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도 개성적으로 연출한다. 희생자가 되는 것은 연약한 여성이 아니라 건장한 성인 남성이다. 그는 여자의 마취주사를 맞고 끌려와 이빨과 손톱을 모두 뽑힌 채, 컴컴한 밀실에 갇힌다. 그 안에는 또 하나의 희생자인 여고생과 기괴한 괴물이 함께 있다. 남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길 위의 여자>가 건드리는 것은 모성신화다. 자기 자식이지만, 그를 보기 위해서는 언제나 마취주사가 필요하다. 끔찍한 괴물이 된 자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성을 잃은 그녀는 복수를 택한다. 괴물을 손가락질하는 세상 사람들을 끌어와, 조롱받는 자식의 장난감으로 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택한, 정상적인 세상에 대한 비정상적인 복수다.

현실과 비현실을 이어주는 것은 꿈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결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도 만날 수 있다. 김미리의 <Dream Machine>에는 제목 그대로, 꿈을 꾸게 하는 기계가 나온다. 연인 사이인 아미와 유진은 같은 꿈을 꾸게 해 준다는 기계를 사용해 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원하는 꿈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에 즐거워하지만, 결국은 늘 유진이 꾸는 악몽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꿈은 현실이 된다. 꿈이란 잃어버린 것,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게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악몽도 동반한다. <Dream Machine>은 꿈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꿈의 양면성이 구체적으로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김준영의 <통증>은 김종일의 <몸>을 떠오르게 한다. 아내가 사라진 후, 명훈에게 통증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빨이 다시 자라나고, 손가락이 자라게 된다. 그러더니만 몸 전체에서 나 아닌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 통증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내를 죽인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죽임을 당한 아내의 원한이 살아나는 것일까. 신진오의 <압박>은 일종의 인체실험에 관한 소설이다. 전신마비 환자인 동인은 어느 날 자신의 방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판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밀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압박감을 느끼던 동인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모두 인체 실험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사실 의아하다. 대체 이유는 무엇일까. <압박>에서 인체실험을 한 이유는 무엇이고, <통증>에서 내 안의 다른 존재가 자라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무서운 상황을 전달하려는 괴담이 아니라면, 단편소설이라면 그 이유가 나와야만 한다. 그러면 명훈의 심정이 죄책감인지 아니면 아내의 원한에 점차 침윤당하는 것인지가 좀 더 리얼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압박당하며 죽어가는 인간의 마음을 그들이 어떻게 읽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2>는 1권에 이어 ‘한국적인 공포’를 다루고 있다. 1편이 약간 ‘난도질’에 치우쳤다면, 2권은 공포의 세계가 더욱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공포의 다양한 세계를 화려하게 펼쳤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아쉬움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공포문학단편선2>는 한국의 공포문학은 물론 영화에도 더욱 의미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대중문화의 기본은, 일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포의 더욱 많은 이야기를, 계속될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 기대한다.

Posted by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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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진짜 보고 싶네요...

    글도 너무 재밌게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