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도 기이한 이야기 전집
어렸을 때에는 ‘전집’이 유행이었다.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은 기본이고 아이가 있는 집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빨간 색의 아동문학전집 역시 필수였다. 서점에 가서 한권씩 사서 보는 것보다는, 책꽂이에 좍 꽂혀있는 전집에서 한 권씩 골라 펼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시절에는 어떤 이야기나 재미있었다.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가 있고, <삼국지> 축약본이 있는가 하면 <톰 소여의 모험> <소공녀> <제인 에어> 같은 소설들도 있었다. 셜록 홈즈와 루팡이 낀 전집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책들도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같은 작품들. 아동용으로 각색된 것이긴 하지만, 내용은 원전과 다를 게 없다. <검은 고양이>에서는 아내를 죽이고 벽 속에 감춘 남편이 언젠가부터 고양이의 째지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서 조금씩 미쳐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이지는 않고, 단지 울음소리만 들리는 고양이는 섬뜩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도리안 그레이가 나온다. 어렸지만, 영원한 젊음이 얼마나 위험한 욕망인지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이미지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도리안 그레이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다. <검은 고양이>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과연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일까? 아이들에게는 가급적 건강하고 밝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어둡고 습한 이야기들이 선연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이야기들이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원형이 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고딕문학, <우주전쟁> <해저 2만리> <타임머신> 등의 SF, <바스커빌의 개> <기암성> 등의 추리소설에 빨려들었고, 그 취향은 나이가 들어서도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본 아이디어회관 문고의 SF, 동서추리문고의 추리소설과 SF는 정말 즐거운 만남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밝고 화사한 이야기만이 아니, 어두운 이야기 역시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무서워하는데 굳이 들려줄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언제나 밝은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어둠을 알아야 빛도 알 수 있다는 원칙 정도는 숙지하는 것이, 아이의 인생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아가, 어두운 이야기야말로 세상을 다층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다. 디즈니의 밝고 화사함에 지친 팀 버튼이 <가위손> <배트맨> <비틀쥬스> 같은 걸작을 만들어낸 것처럼. 팀 버튼은 어두운 풍자와 슬픔에 세상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밝고 화사한 것만으로는, 이 세상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 버튼은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우울증에 걸린 배트맨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상의 악을 쓸어버리긴 하지만, 자신 내면의 폭력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어두운 이야기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찍부터 균형 잡힌 시각을 만들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억지인가?) 또한 어두운 면을 보아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두운 이야기를 멀리 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지금 한국 대중문화의 상상력이 일천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이야기를 보고 들어야만, 거기에서 기초하여 또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아동문학에서도 지나치게 리얼리즘과 건강한 이야기만 찾는 덕에, 음울한 고딕문학을 아동용으로 각색한 책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괴담을 좋아하지만, 싸구려로 만들어진 괴담 만화나 보고 있고. 그나마 해리 포터가 ‘어둠’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기담문학 고딕총서를 반긴 것은 그런 이유가 크다. 디카프리오 헌의 <괴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오월의 밤>이 줄줄이 나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거칠게 말한다면, 이 세권의 책은 동양과 서양에 전해지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제대로 찍어서 들려주는 것이다. <괴담>은 일본에 정착한 영국인이 ‘괴담’을 채록하여 묶어낸 것이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설녀를 비롯하여 귀 없는 호이치, 목이 늘어나는 로쿠로쿠비 등 원령, 악귀, 요괴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들이 망라된다. 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지기보다, 있는 이야기의 원형을 그대로 적어놓았기에 극적인 재미는 덜한 편이다. 하지만 이 괴담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일본 공포의 원형이다. 서양인이 혹한, 동양 공포의 원형이 바로 <괴담>인 것이다.
고딕문학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다. 즉 근대가 시작되며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찬양되던 시기에 고딕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과거의 민담이나 설화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았던 고딕문학은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에 초점을 두었다. 아폴론보다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한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을 사랑했고, 울창한 숲을 달리면서 생명의 정기를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마녀나 늑대인간, 흡혈귀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종교의 시대를 지나 이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밤과 어둠은 기피대상이었다. 아니 오히려 디오니소스는 더더욱 밤의 어둠 속으로 숨어야만 했다. 바로 그 순간 고딕문학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직시하고, 한때 삶과 동등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던 죽음의 세계를 복권시켰다. 그것이야말로 신세계의 발견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잃어버린 세계의 부활이었던 것이다.
기담문학 고딕문학 총서는 믹 잭슨의 <뼈 모으는 소녀>와 위싱턴 어빙의 <알함브라>로 이어진다. <뼈 모으는 소녀>에는 뼛조각을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침한 동굴에서 수행자를 사육하고 인간의 가죽을 벗겨 훈제하는 등 현실과 거리를 둔 기묘한 인간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전설 속의 걸작은 아니지만, 현대의 유머러스한 고딕 문학이다. <알함브라>는 19세기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 에스파냐의 알함브라 궁전에 머무르면서 들은 무슬림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다. 서구인이 보았을 때, 중동은 전혀 낯선 땅이었다. 기후도, 동물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달랐다. 기이한 땅에 존재하는, 더욱 더 괴상한 이야기들을 이방인인 워싱턴 어빙이 기록한 것이다.
나는 이처럼 현실의 이야기가 아닌 것들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나와는 상관없는 기이한 이야기라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비현실들이, 이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것들이 언제든, 이 현실과 뒤엉켜 육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끌린다. 비현실들이 당장 눈앞에서 벌어진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과 그 함의가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은 현실이지만, 그것이 명백한 현실이라고 누가 확증할 수 있을까. <매트릭스>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인도 신화에서 말하듯 신의 꿈일 수도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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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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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장편보다는 이런 단편집들이 더 좋아요..스티븐 킹..도 단편집 있는데 이것도 구해서 봐야겠네요,,,^.^
이런 단편집들 언제 시간내서... 돈 왕창 깨면서 -_-;; 구입해야죠..
얼마 없는 비상금으로 지를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