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화려함
<사쿠란>에 관계한 인물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젤리 인 더 메리 고 라운드> <해피 마니아> <워킹 맨> <슈가슈가 룬> 등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창조한 만화가이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부인인 안노 모요코의 원작. 음악성으로 보면 일본 최고의 여성 가수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시이나 링고의 음악. <불량공주 모모코>에서 한없이 무식하면서도 순수한 양키(폭주족) 소녀를 연기했던 배우이자 가수인 츠치야 안나. 칸노 미호, 시이나 캇페이, 키무라 요시노, 안도 마사노부 등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조연 배우들. 그리고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뛰어난 사진작가로 유명한 니나가와 미카 감독.
안노 모요코의 이야기는 충분히 즐거울 것이고, 사진작가의 영화 진출작답게 화면은 아름다울 것이고, 시이나 링고의 음악으로 귀 또한 극한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고, 배우들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 황홀할 것이다. 남은 것은 연출력뿐. 사진작가나 소설가 혹은 배우 등이 영화에 뛰어들었을 때,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결국은 연출력이다.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것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잭 니콜슨이 영화에 대해 모르겠는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순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안노 모요코의 <사쿠란>이 니나가와 미카라는 촉망받는 사진작가의 연출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려한 것도 그 점이었다. 사진은 순간, 찰나의 예술이다. 하지만 영화는 흘러가는 시간의 예술이다. 아주 닮아 있고, 때로 아주 가까운 지점까지 갈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진과 영화 모두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니나가와 미카가 아무리 탁월한 사진작가라 해도, <사쿠란>의 영상이 지극히 아름답거나 의미심장할 거라는 생각 정도였다.
<사쿠란>은 에도 주변의 유곽 요시와라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번역에서는 계속 '게이샤‘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유녀(遊女)가 정확한 표현이다. 게이샤라는 명칭은 나중에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된 것이고, 요시와라의 여성들은 스스로를 유녀라고 불렀다. 주인공인 키요하는 8살 때 요시와라에 팔려왔다가 유녀가 된다. 그리고 요시와라의 서열에서 최고의 자리인 오이란에 오르게 된다. <사쿠란>은 오이란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결코 요시와라의 제도와 규율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길로만 나아가는 ’강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안노 모요코가 만들어낸 사쿠란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츠치야 안나의 거친 목소리와 도발적인 눈매는 사쿠란에 썩 어울린다. 캐릭터도,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롭다.
영화를 보기 전에, 관계된 인물들의 이름만으로도 상상했던 아름다움은 충분히 만날 수 있다. 화면은 아름답고, 배우들을 보는 것도 좋고, 음악도 너무나 좋다. 니나가와가 잡아낸 화면의 구도와 색감도 때로 황홀할 정도다. 하지만 <사쿠란>은 아쉽다. 모든 요소는 일류급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영화 <사쿠란>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아니 인물들 자체에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그들의 인생역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친다. 그건 결국 연출력의 문제다. 아무리 요소들이 훌륭해도, 그건 각 분야를 맡은 스탭들의 역량일 뿐이다. 영화 전체를 시이나 링고의 음악만으로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나마 <사쿠란>은 각 요소들이 너무 훌륭해서 끝까지 보게는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아름답지만, 별다른 깊이는 없다. 미성숙한 화려함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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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색깔있는 영화를 아시나요? - 사쿠란
Tracked from FAN이 FAM이 되는 공간 2007/10/04 05:02 삭제얼마전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저의 여자친구를 따라 명동 QCN에 갔습니다. "사쿠란"이라는 영화를 보러 말이죠. 지극히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즘같이 양적 프로모션을 앞세워 영화 홍보를 하는 때에는 광고안하는 영화는 극히 매니아층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알기 힘드니까요. 뭐, 저도 무슨영화인지 1도 모르고 여자친구 손 잡고 졸래졸래 따라갔습니다. 아는 사람아니고서는 찾기도 힘들다는 QCN, 저는 일단 이 극장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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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가와 미카감독은 유명 사진작가죠...제가알기론 뮤직비디오도 몇편찍은거로 알고있는데 아마 배우들과의 인연도 그때 맺었지않나 싶어요.. 저같이 광고를 하는사람들은 내용을 떠나서라도 꼭 보고싶은영화입니다...색감이나, 영상, 앵글...등등...일할때 참고할만한 좋은자료들이 곳곳에 숨어있을꺼같은 느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