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탄생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탄생은 좀 더 영화를 편하게 보기 위해서 고심을 하던 한 남자의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가를 찾는 법이라고, 리차드 홀링쉬드란 남자는 자동차와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영화가 상영중인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매번 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을지 방법을 고심하다 결국 야외극장이라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역사적인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첫 실험은 소박했다. 그는 자신의 차 후드 위에 영사기를 올려놓고, 나무로 짠 스크린과 그 뒤에 감춘 스피커를 가지고 테스트를 가졌다. 그 후 점점 발전이 되면서 관객을 배려한 시도를 가진다. 야외극장의 치명적 단점은 날씨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로 스프링클러로 실험을 하면서 우천시에도 사용할 수 있는 사운드 장치를 고안하려고 애를 썼고, 자동차들이 서로에게 방해를 받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한 남자의 열정은 결국 1933년 5월 그 결실을 맺는다. 특허신청이 통과되면서 그 다음달 미국 최초의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뉴저지 주에 들어섰다. 처음 운영은 극장식 그대로 스크린 뒤에 스피커를 설치한 방식이었지만, 결국 차창 안으로 코드를 끌어당겨 사용하는 콤팩트 스피커로 대체되었고, 결국에는 차 안에 설치된 라디오가 스피커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다.
초기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성장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특히 1942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야심에 차게 출발했던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베이비붐과 맞물리면서 이 새로운 영화 환경은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베이비붐 시대를 맞이하면서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부모가 영화를 보러 갈 때 아이들을 집에 놔두고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얘들을 차안에 태운 채 그냥 영화를 볼 수 있다는 편리함은 부모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홍보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시끄러운가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극장"이라는 형태로 대중들에게 알렸고 이것은 꽤나 잘 먹혀들었다.
<허리케인>(1937)이 상영되던 시절의 드라이브인 시어터
또한 50~60년대에는 십대 청소년들이 데이트 장소로 가장 좋은 공간으로 드라이브인 씨어터를 이용했다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들의 경우 영화도 보지만,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으니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영화가 상영중인 곳에서 차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베이비붐 시대에 큰 성장을 이루었다는 주장은 실제로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인기가 높아질 때 많은 지역에서 유모들이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자신들 직업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데모 집회를 가진 것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B무비들의 천국으로
드라이브인 씨어터가 B급영화들의 성장에 크게 기여를 하게 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주로 위치하는 장소의 특성과 당시 배급 시스템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저예산 B급 영화들의 성장을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메인 스트림 영화들의 경우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영화 상영 날짜를 4주 정도의 시간을 잡았다. 도심에 위치한 극장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경우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수가 적은 외곽이나 시골 지역에서 영업을 했던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경우 영화 상영 1주에서는 지역 주민들로 붐비게 되지만, 2주차로 접어들면서 관람객의 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피의 축제>(1963)
<피의 축제>로 본격 고어영화의 서막을 알렸던 허셀 고든 루이스 감독이나, B급영화의 황제 로저 코먼과 같은 사람들이 적은 제작비에 많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확장으로 영화를 찍기만 하면 판매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에 메이저 영화사에서 극장용 B무비를 만들어내서 성공을 거두면, 이와 유사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는데 이들 영화들이 드라이브인 씨어터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으로 조지 팔의 <우주전쟁>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재빠르게 드라이브인용으로 이식한 <화성에서 온 침입자 - Invaders from Mars>가 등장했고, 또 다른 작품 <타임머신>이 관객의 주목을 받으니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 Beyond the Time Barrier>란 작품들이 재빠르게 제작이 되어 드라이브인 씨어터에서 각광을 받았다. 흑인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 특히 컬트 액션 영화로 숭배 받는 <샤프트>, 흑인 뱀파이어 영화 <블라큘라>와 같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왼편 마지막 집>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몰락
그러나 성공이 있으면 몰락 또한 있는 법. 애초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시작은 일반 B급 영화들을 위주로 상영을 하고, 대부분의 가족단위 관객들이 돌아간 후, 추가적 수입을 얻기 위해서 자극적인 영화들을 상영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면서 성장을 했다. 늦은 밤 문 닫기 얼마 전에 일부 성인 관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도한 폭력과 노출이 심한 성인영화들을 검열을 피해 몰래 상영을 했었고 50~60년대 폭발적인 성장세에 올랐다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고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보급이 되면서 드라이브인 씨어터도 자연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는다. 70년대부터 영화 검열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가족이 즐기기에 적당하지 않은 영화들이 상영이 된다는 지적이 늘어났고, 일부 극장들이 포르노를 상영하면서 그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여기에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수익이 줄어들게 된 또 다른 문제로는 날씨에 따른 영화 상영 제한, 그리고 밤에만 상영이 가능하다는 것, 자동차에 몰래 숨어서 들어와 공짜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도 드라이브인 씨어터의 문제점으로 지적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약 100개의 드라이브인 극장이 있었지만,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약 5000개까지 늘어났지만 지금은 하향세로 많은 극장들이 문을 닫았고, 지금은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기 힘들다고 한다.
그 후 60년대를 지나면서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하지 않는 저예산 독립 영화들에게 'B급영화'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이 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나칠 정도의 마니아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장르영화들도 B무비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서 B무비가 메이저로 들어오면서 그 구분이 애매모호하게 이루어졌다. 결국 지금의 B무비란 명칭은 독립 저예산 영화 또는 인디 영화와 메이저 영화, 블록버스터 영화를 구분하면서 많이 쓰이게 되었다. (사진은 B무비의 대부로 불리는 로저 코먼의 <갈가마귀>(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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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은글..
고맙습니다.
아... 저희가 감사하죠.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
B급 영화라는 단어가 사실은 주류냐 비주류냐를 따지는 단어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공포물이나 SF, 인디 영화등 장르의 성격이 일반이 아닌 마니아층에 어필하는 특성을 지닌 영화가 바로 B급 영화로 불리웠죠. 요즘 들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래서 디워가 B급 영화로 불렸다고 시끄러웠던게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