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입 (1)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성공하리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역시 믿지 않았으니까. 키 157cm에 몸무게 84kg이라는 신체 조건과 운동을 싫어하는 천성은 다이어트 성공에 확신을 가질만한 그 어떤 희망도 저버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게다가 서른둘이라는, 신체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엔 이미 많은 게 굳어져버린 나이도 그런 절망에 큰 몫을 담당했다.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면서 세인들은 ‘몸짱’이니 ‘S라인’이니 ‘V라인’이니 하는 따위의 유행에 열광하고 있었다. 비만은 죄악이었고 체중 미달은 축복이었다. ‘착한’, ‘이기적인’, ‘바람직한’ 따위의 형용사나 관형사들이 날씬한 몸매에 대한 수식으로 쓰였고, ‘섹시하다’는 말은 애나 어른에게나 최고의 찬사가 되었다. 서점의 교양 건강 코너에만 가 봐도 다이어트에 관한 책은 무수히 많았다. <살! 굶지 말고 빼라> <34인치에서 24인치로 가는 지름길> <살에게 말을 거는 다이어트> <이주현의 80일간의 걷기 다이어트> <먹으면서 빼는 녹차 다이어트> <행복으로 가는 자기최면 다이어트> <1주일에 1kg 빠지는 특효 다이어트> <체질을 알면 다이어트가 즐겁다> <최후의 다이어트> <더 이상의 다이어트는 없다> <반창고 다이어트> <테이프 다이어트> <먹어야 살이 빠진다> 등등 무수한 다이어트 관련 책들이 빼곡했고, 대부분의 다이어트 책의 저자들은 비만의 구렁텅이에 빠져 절망 속에 허우적대다 심기일전하여 30kg이상 감량하는 데에 성공한 다이어트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세상이 축복과 환희로 가득 차는 신비 체험을 맛볼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었고, 비만이 세상에서 왜 없어져야 하는 암적인 현상인지에 대해 자신의 체험과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등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다이어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너… 뚱뚱하니?’ ‘쫙 빼자! 비키니 이벤트’ 따위의 배너가 무수히 많았고, 하나면 클릭해 봐도 다이어트 실내화, 다이어트 매트, 다이어트 CD, 다이어트 볼, 다이어트 슬라이드, 다이어트 디지털 매직후프, 다이어트 웨어, 홍삼 다이어트, 다이어트 벨트, 다이어트 밴드, 다이어트 화이버, 다이어트 땀복, 진슬림 다이어트 등등의 다이어트 식품 및 다이어트 용품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서른이 되어 허리 사이즈가 34인치에 이를 때까지 사실 나는 다이어트에 대해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뱃살이 1그램만 늘어도 세상에 종말이 머지않은 듯 호들갑을 떨어대는 말라깽이 룸메이트나, 늦은 밤 내가 사는 오피스텔 앞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고 있는 여편네들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입에 집어넣는 햄버거의 열량이 몇 킬로칼로리인지, 라면 한 그릇을 먹으면 얼마 동안 줄넘기를 해야 그 열량이 체지방으로 가지 않는지,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살아도 세상살이는 충분히 피곤했다.
워낙 밖에 나돌아 다니길 좋아하지 않는 성격에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을 시작하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두문불출하기 일쑤여서 사람 접할 기회도 전혀 없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는 인터넷 홈쇼핑만을 이용해도 따로 쇼핑 나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결혼도 안 한 처녀 허리 사이즈가 34인치라고 해서, 혹은 키 157cm에 몸무게 84kg이라고 해서 사는 데에 지장은 전혀 없었다.
만일에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우, 짜증 나. 웬 일이야. 나 요즘 왜 이러니. 며칠 방심했더니, 살이 또 불었어.”
그 날도 체중계에 올라선 룸메이트는 체중계에서 내려서면서 또 툴툴댔다. 나는 들은 체 만 체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렸다. 제작사가 요구한 시나리오 수정을 사흘 안으로 끝내야 했다. 여주인공의 비중을 좀 더 늘리라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애초에 신인 배우를 기용하기로 했던 여주인공 역에 인기 여배우가 각별한 관심을 보이자, 그 배역에 비중을 높이고 캐릭터를 좀더 미끈하고 세련된 여자로 수정하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내가 설정한 그녀는 퉁퉁한 몸매에 머리를 북북 긁으면 우수수 비듬 떨어질 듯한 털털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 배역을 탐낸다는 여배우는 성형수술로 다져진 조각 같은 얼굴에, 몸의 모든 살과 근육이 증발하고 뼈와 가죽만 남은 듯한 마른 몸매에 가슴만은 기형적으로 풍만해서 공식석상에 가슴 패인 드레스를 즐겨 입고 나타나며, 인터뷰를 할 때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마다 허허공공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자였다. 한마디로 내 시나리오상의 그녀와는 천양지차였다. 그런 여자를 내 시나리오에 끌어들여야 한다니. 시나리오의 내용이 그녀의 캐릭터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서 캐릭터를 바꾸자면 기존의 시나리오를 거의 모두 뒤집어야 할 판이었다.
“아무래두 체중계를 바꿀까봐. 얘가 요즘 정상이 아닌 거 같어.”
내가 들은 체 만 체 하자, 룸메이트가 좀 더 목청을 높여 말하곤 나를 흘끔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누군가가 관심을 보이고 대꾸를 해주어야 삶의 보람을 느끼는 여자였다.
“몇 킬로나 늘었는데? 한 십 킬로 불었냐?”
마지못해 응수를 해주니, 그녀는 얼굴을 과장스럽게 찡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언니는 끔찍한 소리 하구 있어! 누구 죽는 꼴 볼려구 그러니? 0.5 킬로 늘었어. 겨우 이틀 사이에. 어우, 오늘 진규 씨 만나는 날인데, 끼는 옷도 못 입구 나가겠네.”
그러면서 그녀는 소파에 주저앉으며,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표정으로 불과 1cm도 안 되는 자신의 뱃가죽을 쥐고 흔들었다.
“진규는 또 누구야? 며칠 전에 만나던 태진인지, 태진안지는 어떡하구?”
“태진이야 그냥 즐길라구 만나는 거구, 진규 씨는 심각하게 만나는 거야. 비전이 있거든.”
“도대체 몇이냐. 인제 서너 명만 채우면 한 백 명 되지 않어? 넌 그렇게 이 놈 저 놈하구 자구 다니면 나중 니 남편한테 미안하지두 않냐?”
“저 놈의 도덕책… 또 시작이야. 다 즐기면서 사는 거지.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 아냐?”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 또 뭔데…”
“어우, 또 막 짜증 날려구 그래. 나 나갈래.”
투덜대며 현관을 나서던 룸메이트가 물었다.
“언니, 나 떡볶이 사올 건데 먹을래?”
“…….”
“먹을 꺼, 안 먹을 꺼? 빨리 얘기해.”
“찐계란하구 튀김 몇 개 넣어 달라구 그래.”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룸메이트처럼 말라깽이였다. 별명이 '막대기'였으니, 말 다 했다. 가슴도 당최 안 자라서 고3 때까지 75A 사이즈 브라를 입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살이 트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몸무게는 46kg이었다. 내 부모가 그다지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런지 두 언니와 남동생도 마른 편이었다. 따라서 내가 비쩍 마른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이상하게도 그 전까지 구미를 당기지 않았던 모든 음식들이 점점 내 식욕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갈치튀김과 김치볶음을 유난히 좋아하기는 했지만, 먹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던 나였다. 세 끼를 꼭 먹어야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생리가 싫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하루에 한 두 끼만 먹었다. 입시를 준비하는 중에는 정말 뭘 먹는 시간이 그토록 소모적인 낭비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감추어져 있었던 식욕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부연 김이 피어오르는 밥알 한 알 한 알이 입안에서 씹히는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계란을 얹혀 끓인 뜨끈한 라면 국물이 입 속을 맴돌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그 맛이 그렇게 얼큰할 수가 없었다. 호두가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이 혀로 녹아드는 그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고, 핫칠리 소스가 뿌려진 피자가 쫄깃한 피자치즈와 함께 혀에 감겨드는 그 맛이 그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류시림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때까지 눈썹 한번 밀지 않는 숙맥에 전혀 꾸밀 줄도 몰랐던, 게다가 몸매까지 ‘통’이었던 친구였다. 졸업하고 1년 후 거리를 걷던 어느 날, 나는 세련된 화장에 첨단 유행을 달리는 옷차림의 늘씬한 모델과 마주쳤다. 정말 모델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데 그 모델이 나를 부르며 손짓까지 하는 것이었다. 30초가 넘는 탐색 끝에 나는 비로소 그녀가 고등학교 때의 그 류시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다이어트와 지방흡입술과 화장술과 새 패션으로 류시림은 전혀 새로운 류시림이 되어 있었다.
그 류시림처럼 고등학교 때까지 전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모든 음식들이 돌연 예상치 못했던 매력으로 변모해 나에게 다가와 나를 유혹했던 것이다. 거리를 걷다 고기 집에서 풍겨 나오는 갈비 냄새만 맡아도 이내 군침이 침샘에서 솟구쳤고, 정기공연 연습중인 동아리 모임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먹음직스러운 두부와 파, 그리고 입이 벌어진 바지락이 얹혀 보글거리는 된장찌개가 떠올라 당장이라도 된장찌개로 이름난, 학교 앞 평양 할머니 백반집을 향해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한 갑작스런 식욕의 근원은 나로서도 모를 일이었다. 시골집의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해답은 없었다.
“글씨다. 난 니 뱄을 때나 뭐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디…….”
“키 클라고 그런 거 아녀? 니 작은 삼촌은 군대 가서도 키 컸는디, 아마 그 때 뭐가 그릏키 먹고 싶었다 그러제?”
그러나 나는 임신을 하지도 않았고, 불어난 식욕으로 인해 키가 크지도 않았다.
그저 놀라운 속도로 몸이 불어났을 뿐이었다.
살이 쪄 본 사람은 안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뱃살의 출렁임이 그 시작이라는 것을. 뛰기라도 하면 두 가슴과 뱃살이 풍랑을 만난 고깃배들처럼 이리저리 출렁이느라 난리였다. 여름이 되면서 점점 양 허벅지살이 서로 쓸리며 땀으로 불쾌하게 젖어들었고, 살 여기저기가 트면서 흉한 자국들을 남겼다. 여름이면 조금만 걸어도 땀으로 온몸이 젖어들었고, 양말을 신을 때에도 불어난 뱃살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다들 놀라는 눈치였고, 더러는 '너 왜 그렇게 불었니? 몸매 관리 좀 해야겠다'며, 조언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옷 사이즈도 44사이즈가 55사이즈가 되고, 55는 이내 66이 되었다. 그리고 66은 끝내 77, 88까지 치달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는 데에 다른 신체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나의 요소는 바로 뚱뚱함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정도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시쳇말로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룸메이트가 몸무게에 대해 툴툴대다 떡볶이를 사러 나간 그 날부터 판도가 달라졌다. 그 날 그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떡볶이를 사온다던 룸메이트는 자정이 가까워오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휴대폰을 걸어 봐도 고객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도중에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러 갔거니 싶으면서도 왠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정이 넘어서야 인근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패싸움이었다. 중고교 시절 속칭 ‘노는 애들’과 어울렸던 전력이 있는 룸메이트는 더러 그 때의 ‘성깔’이 나오는 때가 있었다. 그 날도 그랬다. 파출소에 가보니, 룸메이트는 입술이 터지고 얼굴 여기저기에 손톱자국이 선명한 몰골이었다. 전말은 이러했다. 룸메이트가 떡볶이를 사러 오피스텔 건너편 노점에 들렀을 때 기껏해야 고1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계집애들이 담배를 ‘처피우며’ 룸메이트에게 불을 빌리자고 했단다. 발끈한 룸메이트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운운하며 욕 반 훈계 반으로 계집애들을 타일렀지만, 결국 날아온 건 뉘우침의 사과가 아니라, 떡볶이 접시였단다. 그래서 그 애들과 3대 1로 싸움이 붙었다는 얘기였다. 룸메이트 너머에는 룸메이트 못지않게 너절한 몰골의 계집애들이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씩씩대고 있었다. 그러나 파출소에 들어갔을 때 정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룸메이트나 그 애들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솔직히 이런 말 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그를 보며 나는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는, 그 이전까지는 그저 헛소리로 생각해왔던 표현을 절감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에게서는 빛이 났다. 나중에야 그 남자가 싸움이 일어난 현장에 있었고, 싸움을 말리다 파출소에까지 따라와 룸메이트의 변호를 해주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애들이 그렇죠, 뭐. 근데…… 만만치 않던걸요?”
파출소를 나오며 그는 여전히 가슴 부근에 빨간 떡 하나가 말라비틀어져 붙어 있는 룸메이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언뜻 보면 영화배우 정준호를 닮은 얼굴이었다. 그 날 밤 그와 나와 룸메이트는 실내포장마차에서 소주와 오징어 회를 먹었다. 오징어 회는 신선했고, 기본 안주로 나온 미역국도 꽤나 맛깔스러웠지만, 그 날은 왠지 안주에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 날 참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사려 깊은 눈빛으로 대화하는 나를 지켜 봐주었고, 재치 있으면서도 호감이 가는 응수로 나를 즐겁게 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룸메이트가 끼어들어 대화의 물을 흐려놓기는 했다. 예컨대 그와 내가 소설가 이외수를 얘기하면, 룸메이트가 끼어들어 그가 대마초로 감방에 들어갔었던 전력을 끄집어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룸메이트의 그런 참견에도 사려 깊게 응수해주었고, 나와 룸메이트로 하여금 정말 편안한 느낌을 갖게 했다.
“앞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핸드폰번호를 물으며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저두요!”
라고 소리칠 뻔 했다. 나는 그에게 핸드폰 번호는 물론, 집 전화와 내 주민등록번호까지 알려주고픈 강한 욕구를 느낄 만큼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가 요구했다면 아마도 나는 그에게 내 신용카드까지 빌려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만난 지 단 두 시간 만에. 하지만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믿지 못할 헛소리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 체험이 어떤 방식으로 내 인생을 몰락시킬 줄은 짐작조차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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