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앤더슨이 호러 장르에 끼친 가장 큰 업적은 <세션 나인>을 감독한 것이니, <너무 많이 아는 남자>가 가벼운 호러 영화를 보며 편하게 한 시간을 보내려는 시청자들에게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보통 호러팬들이 이 장르에서 원하는 건 쾌락으로서의 공포죠. 하지만 브래드 앤더슨이 <너무 많이 듣는 남자>에서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공포가 아닌 고통입니다. 여기엔 SM식 쾌락적 요소도 없습니다. 그냥 불편하고 괴로운 고통이죠. 느릿느릿하고 끈질기며 사람을 도대체 놔줄지 모르는 순수한 고통.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래리 피어스라는 남자입니다. 직업은 컴퓨터 회사의 전화상담원들을 모니터하는 것이죠. 그에겐 이 직업에 완벽하게 맞는 재능이 있는데, 그건 극도로 예민한 청각입니다. 너무 예민해서 거의 초능력처럼 보일 정도죠.
그는 불행한 남자입니다. 아들을 병으로 잃었고 그 이후로 아내와의 관계도 별로 좋지 못하죠.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신경과 융통성 없는 성격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는 남자인데, 이런 일까지 겹쳤으니 그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는 점점 정신적으로 무너져 갑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에피소드가 그의 정신적 붕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 그의 청력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주변의 소음이 귀와 뇌를 쿡쿡 찔러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그걸 한 백배로 부풀린 뒤 한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경험해본다고 생각해보시죠. 브래드 앤더슨이 시청자들에게 저지르는 짓이 바로 이겁니다. 게다가 그건 단순한 신경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아요. 래리는 그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최악의 행동만 골라서 저지르고 그런 그의 행동들은 몽땅 화살이 되어 그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물론 그는 정신적으로 붕괴된 상태라 브레이크 역할을 할 이성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발끝이 근질근질해요.
<너무 많이 듣는 남자>를 가장 재미있는 <마스터즈 오브 호러> 에피소드로 뽑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 에피소드는 순수한 오락으로 즐기기엔 지나치게 암담합니다. 전 래리가 겪는 고통을 꼭 이런 식으로 우직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이 앤더슨에게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니고. 그러나 적어도 이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예요. 적어도 끝난 뒤에 시청자들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작품들보다는 백 배 천 배 낫지요. (07/08/22)
기타등등
앤더슨은 요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무대로 한 스릴러인 <Transsiberian>이란 영화를 찍고 있더군요. 캐스팅이 괜찮습니다. 에밀리 모티머, 우디 해럴슨, 벤 킹즐리,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근데 이게 흥행에 도움이 될만한 명단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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