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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일단 영화가 짧더군요. 하긴 원래부터 크로넨버그는 할 말만 간단히 하고 끝내는 사람이긴 하죠. 불필요한 군소리 없이 휙휙 넘어가는 속도감이 좋았습니다.

2.

생각보다 영화는 보기 쉬웠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제가 상상하던 줄거리는 한 동안 잊고 있던 폭력 성향이 식당의 총격전 이후 거침없이 터져나오고 그러는 동안 주인공을 노리는 악당들뿐만 아니라 가족도 완전히 박살난다는 것이었거든요.

다행이지만 주인공 톰 스톨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어요.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폭력 성향을 통제하고 있었지요.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에게 가해진 스트레스와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는 전체적으로 놀랄만큼 침착했고 비폭력적이었습니다. 하긴 그는 거의 20년 동안 그러면서 살았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죠. 일단 그가 사람을 죽일 때는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을 지키거나 주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죠. 이 경우 그는 계산적이고 냉철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들은 조금 복잡합니다. 톰이 학교 깡패를 두들겨 패고 돌아온 아들 잭의 따귀를 후려갈길 때,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아들이 자신의 폭력 성향을 통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자길 피해 달아나는 아내 에디를 막는 장면은 조금 더 재미있습니다. 망가지는 부부생활을 지키려는 그의 행동은 남편의 폭력처럼 시작하지만 에디가 주도하는 섹스로 이어지고 그 다음에 그는 아무런 힘없이 버려집니다. 두 장면 모두 좌절한 톰을 뒤에 남겨두고 끝이 나지만 사실 정말로 강한 건 가족 구성원에게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쪽이 아니라 힘없이 뒤에 남겨진 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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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톰 스톨은 사악한 악당인 그의 전신 조이와 지금의 자신을 분리시키려 하고 있었지만 그 둘의 성격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조이가 지하세계에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충동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폭력 성향을 정확히 통제할 줄 아는 전문가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가 톰 스톨이 되어 지하세계로부터 달아난 것도 "난 사람처럼 살고 싶어!"라는 소박한 소망 때문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자신의 폭력성향을 통제하지 못해 몰락할 걸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고 폭력과 폭력의 억제는 모두 그를 위한 도구들입니다.

3.

톰의 아들 잭을 보면서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와, 쟨 앞으로 학교 생활 폈다!"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학교 짱을 두들겨 팬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총으로 갱두목을 쏴죽인 애를 누가 건드리겠어요?

하지만 전 그 아이의 처음 태도가 더 존경스러웠습니다. 수컷들의 세력 싸움에 자존심 따위를 맡기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영리하게 폭력상황에서 빠져나오는 태도를요. 참으로 고단수였어요.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그걸 인식하고 있다고 해도 피 끓는 십대 남자아이가 그 상황을 편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죠. 이 골치 아픈 스트레스는 그가 아주 짧은 기간 안에 터트린 일련의 폭력으로 몽땅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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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의 폭력은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터져 나온 충동적 행동이거나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입니다. 그 애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게 아니라 그냥 폭력을 잘 사용하는 아이입니다. 전 앞으로도 그 아이가 새로운 학교 짱이 되어 학교를 지배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자신이 경멸하는 대상이 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아마 잭은 앞으로도 그런 무리들을 더 경멸하면서 고고하게 살아갈 것 같은데, 그게 그 애의 생존엔 유리할 겁니다. 주먹질과 총질이 습관화된 바보들은 빨리 죽습니다. 하지만 폭력을 다룰 줄 알지만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훨씬 오래 살아남지요. 부전자전!

4.

여기서 진짜로 심각한 심리적 위기를 겪는 인물은 톰이 아니라 에디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톰과 조이는 같은 사람입니다. 지금 톰이 조이라고 부르는 건 자신의 또다른 자아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었던 폭력성향이죠. 전 그가 톰이라는 인격을 만든 순간 지금까지 자신의 일부였던 몇몇 부분들을 모아 조이라는 '타자'도 함께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톰의 인격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겠죠. 적어도 톰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인물입니다. 적어도 그의 폭력 성향이 가족 내에서 폭발할 거라는 증거는 없죠. 폭력의 방향성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점에서 그는 생존자인 걸요.

하지만 에디의 경우는 다르죠. 지금까지 에디는 늘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직업도 더 폼나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침실에서도 주도권을 잡고 있었죠. 남편 톰은 그런 에디의 군림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총질을 하기 시작하더니 위험한 과거를 드러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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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두 가지 고민에 휩싸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자기가 지금까지 십 여 년 동안 같이 산 남편이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고민이죠. 두 번째는 현실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족 내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걸 그냥 남편에게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이 역시 가족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계단의 섹스신이 재미있습니다. 여기엔 에디의 고민 모두가 담겨 있습니다. 일단 에디는 지금까지 몰랐던 남편의 새로운 모습에 성적으로 자극됩니다. 이건 가족의 안정을 위해 갑자기 수상쩍어진 남편을 그냥 눈 딱 감고 받아들이려는 시도일 수도 있어요. 이는 여전히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섹스를 통해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섹스 신이 끝난 다음에 남편 톰이 짓는 표정을 보면 그건 일단 성공인 것 같습니다.

이게 언제까지 먹히라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에디와 톰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도 그거겠고요. 하지만 다시 살아난 불씨가 그렇게 쉽게 꺼질까요? 에디는 과연 톰의 과거를 용납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더군요. 톰의 과거가 폭로되었기 때문에 에디의 입지가 더 강화될 거라고요. 이건 몽땅 톰의 잘못입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죠. 하지만 여전히 톰은 가족과 아내를 사랑하고 지금의 상태가 유지되길 빌죠. 그럼 이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입니다. "이젠 몇 년간 죽었다!" 생각하고 알아서 기는 거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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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갱들... 그들은 죽어도 쌉니다. 지금까지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남은 게 신기하죠. 조이를 처리하고 싶었다면 그냥 조용히 협박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뒤에서 처리하면 되잖아요. 왜 벌레 한 마리가 더 들어와도 팍 티가 나는 그 작은 마을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냐고요. 그 중 가장 바보는 조이의 형 리치죠. 뭐든지 조용하게 할 일만 하는 게 좋은 겁니다. 그런 식의 자기 과시는 자신의 명만 단축할 뿐이죠.

6.

관객들은 이 영화의 폭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폭력의 역사>의 폭력은 영화적 쾌락을 위해 디자인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래도 이 영화의 폭력을 쾌락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아무리 영화가 톰 스톨 주변에 일어난 폭력적인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그리려 한다고 해도 그의 폭력은 대리만족의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요. 그건 학교 짱을 두들겨 패는 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쾌락의 정도는 더 클 거예요. 잭이 정말 그렇게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을 거고, 학교 짱을 두들겨 팬다는 설정은 갱들을 쏴죽인다는 설정보다 훨씬 우리에게 와닿으니 말이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패한 것이냐... 그런 것도 아닌 것이, 크로넨버그는 이 영화에서 그런 폭력에 대한 동조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동조할 수도 있는 폭력과 함께 그를 구성하는 메커니즘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뿐이죠. (07/08/09)

기타등등

톰은 사람을 잘 죽이긴 하지만 뒷처리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더군요. 사방에 지문과 혈흔이 남아 있고 권총 처리도 엉망이고... 물론 알리바이도 만들지 않았겠죠. 정상적인 세계라면 두 번째 사건 이후 연방경찰도 그를 주목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 동네 갱들이 알아서 시체를 처리했을 수도 있겠죠. 집안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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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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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영화, 다섯 번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일본 추리소설 사상 불후의 걸작.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대활약을 그린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은 막대한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음모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으로, 추리 소설 팬이라면 필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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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데이빗 크로넨버그 | 폭력의 역사 History of Violence

    Tracked from Cinema Blues 2007/08/15 12:26  삭제

    전 사실 한국포스터가 더 마음에 듭니다만.작고 구석진 시골마을, 성실하고 사람 좋고 따뜻한 가장네 가게에 강도가 들고, 이들을 물리친 톰(비고 모텐슨)은 졸지에 영웅이 되어 매스컴에 실립니다. 그런데 수상한 자들이 몰려와 가게에 죽치고 앉아 톰을 '조이'란 이름으로 불러대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엄한 사람을 착각하고는 이렇게 무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 톰은 정말로 '조이'란 이름의 킬러였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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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폭력의 역사, 국내에서 벌써 개봉했습니까? 아님 상영이 벌써 종영된건가요? ^^a 스포일러가 포함됬다는 말에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는...CGV나 메가박스, 상영관 수만 많았지 상영작은 블록 버스터 일색이라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 전국에서 유일하게 종로 미로스페이스에서
      현재 개봉 중입니다.
      언제까지 걸릴지는 걱정이지만요...-_-

  2. 8/14까지 매일밤 9시에만 1회상영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초만 해도 3-4회 상영해줬었는데.

  3. 피비린내나는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니..
    편하게 보고, 나중에 섬찟 섬찟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