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츠토무의 세계는 어둡다. 비정하다. 쓸쓸하다. 철저하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이 다카하시 츠토무의 세계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역시 맹수가 되어야 한다. 약한 짐승들을 물어뜯으면서, 다른 맹수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지뢰진>이 섬뜩하면서도, 한없이 매혹적이었던 것은 그런 이유다. 다카하시 츠토무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이 냉혹한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다카하시 츠토무의 <블루 헤븐>은 3권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20, 30권씩 나아가는 작품들에 비하면 단편이지만, <블루 헤븐>의 세계는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다카하시는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끔찍한 지옥도를 그려낸다. 초호화 유람선 위에서 벌어지는 살육전은, <지뢰진>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캐릭터라든가, 치밀하고도 의미심장하게 펼쳐지는 플롯 같은 것은 없다. 짧은 작품 속에, 하고 싶은 말만 밀도 깊게 담아놓았다.
<블루 헤븐>이 눈길을 끈 첫 번째 이유는 그 주인공 때문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점에서는 <지뢰진>의 이이다와 비슷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전혀 다르다. 이성룡은 좁은 방에 갇혀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 안에서 TV를 보면서 세상을 배웠고, TV로 만났던 그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익혔다. 폭력조직에 의하여 살인병기로 키워진 것이다. 그것은 강제로 주어진 임무였지만, 이성룡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지시를 따른다. 그가 TV로 만났던 세상은, 만인이 만인의 적인 정글이었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을 죽여야만 한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가책 없이 사람을 죽인다. 호랑이나 사자가, 사슴이나 물소를 공격하듯 혹은 인간을 물어뜯어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이성룡이 사설 감옥에 갇혀 살인병기로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올드 보이> 생각이 났다. 오대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15년간 사설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풀려나자마자,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단서를 찾아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였지만, 그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성룡에게는 목적이 없다. 그에게 존재하는 것은 단지, 생존본능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죽이고, 모든 것을 이용한다. 오대수는 자신의 잘못(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해도)으로 사설 감옥에 갇혔지만, 이성룡에게는 어떤 잘못도 없었다. 이성룡이 갇힌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원죄 같은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게 덧씌워진. 그의 잘못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운명인. 그가 찾는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다. 왜 나는, 인간은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분명 이성룡은 악당이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여버린다. 그것은 사회가 허용하는 도덕이나 법률을 어기는 것이다. 야생동물 그것도 맹수인 이성룡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그런데 이성룡이 카르프 주노와 대립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변해버린다. 카르프 주노는 거대 재벌인 동시에 암흑가의 제왕이다. 그는 법을 어기면서도, 이 세계의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아니 세계의 정상에 있기 때문에, 그는 법 같은 것을 지키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후 카르프 주노 일가는 이성룡과의 전쟁을 선언한다. 이성룡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만을 안전지대로 피신시킨다. 그리고 무차별 학살을 시작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상황이 아닌가. 9.11 이후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테러를 방지할 목적이라면 세상의 어떤 국가라도 미리 공격할 수 있다고 선언한 미국. 이라크 침공의 이유였던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에도, 미국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카르프 주노의 생각도 비슷하다. 블루 헤븐호를 테러리스트의 손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요소를 격리시켜야 한다. 그것이 <블루 헤븐>에서는 동양인이고, 현실에서는 이슬람교도와 북한이다. 단지 테러 예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카르프 주노는 잔인한 학살을 시작한다. 그리고 안전함을 보장받는 백인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그것은 <블루 헤븐>의 가상세계이지만, 끔찍하게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지뢰진> <철완소녀>에 비하면 <블루 헤븐>은 소품이다. <블루 헤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드라마틱한 지옥도로 표현한다. 카르프 주노의 얼굴처럼 소름끼치는 형상으로. 타카하시 츠토쿠의 강렬한 펜선은, 그 비정하고 황량한 세계를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그의 그림은 여전히 살아있다. <블루 헤븐>은 거대한 이야기를 작은 공간에 투영시킨 소품답게, 작위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와 은유에는 충실하다. 대작들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많지만, 나름대로 <블루 헤븐>은 톡 쏘는 맛을 남긴다.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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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소품들도 뭐랄까 강력한 게 꽤나 많아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렇기에 이 분의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에 상당히 반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저는 조금 가벼운 느낌이 들던데... 너무 잔혹한 것만 접하다보니 신경이 무뎌진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