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 (3)
내 눈에 CT라 불리는 컴퓨터 단층촬영과, MRI라 불리는 자기공명영상검사 그리고 SPECT라는 촬영기를 이용한 핵의학 단층촬영이 이루어졌다. 나는 검사 전 8시간 동안 어떤 음식도 먹지 못한 상태였고, 검사 절차도 복잡했기에 모든 절차가 끝났을 때 기진맥진해 있었다. 며칠 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갔을 때 의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진단실 형광등이 밝혀진 벽에는 나의 눈을 촬영한 CT며, MRI 사진 등등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그 사진들을 난생 처음 보는 얼굴로 한동안 들여다보던 의사는 한참 후에야 나와 나의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음…… 솔직히 의사 생활 20년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의안에 혈관이 침투한다는 게 도저히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Hydroxyapatite)야 사람 뼈하고 구조가 유사해서 혈관 침투가 가능하다지만, 세라믹으로 된 의안에 혈관이 침투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데, 보시다시피 혈관이 의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MRI 촬영결관데…… 이걸 한번 보시죠.”
의사는 나의 머리를 측면에서 촬영한 시상면 MRI 촬영사진을 가리켰다.
“원래 아드님의 경우 눈을 움직이는 외안근이 안구가 탈출되던 당시에 끊어져 있었죠. 워낙 외안근의 손상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저희들이 의안 이식을 하면서도 안와 보충물과 외안근을 잇지를 않았어요. 한데…….”
의사는 한번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현재 그 외안근이 안와 보충물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의학 상식이 전무한 내가 보기에도 안와 보충물과 외안근이 연결된 것이 뚜렷했다.
“현재로서는 저희가 딱히 무슨 해결방법을 제시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워낙 특이한 사례라서……. 우선은 별다른 통증이 없다면 얼마 전 더 지켜보기로 하죠. 아드님의 눈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의사는 그렇게 어물어물 결론 아닌 결론을 내렸다. 나와 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와 한동안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의안이 내 몸과 연결되었다.
그 사실을 직시하자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끝내 욕지기를 참지 못한 나는 뱃속에 들어 있던 모든 걸 병원 건물 앞 화단에 토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울렁이는 속은 진정되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내가 택시를 잡으려 할 때 어머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외할머니였다.
“뭐? 아빠가 쓰러져? 언제? 그래서 지금 어딘데?”
어머니는 놀란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나에게 말했다.
“외할아버지가 쓰러지셨댄다. 엄마 거기 줌 갔다 갈 테니까 너 먼저 집에 가 있어!”
나는 어머니를 붙들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 때 어머니라도 곁에 있어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택시비를 쥐어주고는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떠났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10분이 지나도록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결국 오랜만에 혼자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외할아버지의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심장이 약해 몇 년 전부터 이따금 쓰러지는 일이 있었고, 평소 친손자만 귀여워하고 외손자인 나에게는 한 줌의 애정도 베풀지 않았던 외할아버지였기에 큰 걱정이 가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게는 그 무엇보다 내 눈에 일어나고 있는 미스터리가 더 중요했다.
햇볕은 정말 좋았다. 잠시나마 모든 걸 잊을 만큼. 햇살이 부드럽게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고, 나는 기분 좋은 따뜻함을 느끼며 걸었다. 거리는 평화로웠고, 여유로워 보였다. 저만치 공사를 하고 있는 건물에서 들려오는, 뭔가를 자르는 기계톱 소리마저 듣기에 좋았다. 갑자기 내 의안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실은 없는 일, 잠깐 동안의 가위눌림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였다. 상점의 진열장 유리에 비추어진 나의 눈은, 나의 의안은 전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빼면.
나를 주시하는 눈들도 없었다. 모두들 나의 눈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응시하며 걷고 있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른 경쾌한 걸음으로 보도블록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커다란 삼성생명 건물의 모퉁이를 끼고 돌자, 햇살이 나에게 정면으로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그래서 손을 올려 차양을 만들어 눈을 가렸다. 손 그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여전히 부셨다. 게다가 그 눈부심도 점점 심해졌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건 의안이 끼워진 내 오른쪽 눈도 눈부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믿든 안 믿든 나에게 그건 사실이었다. 눈부심은 나의 온전한 눈에서 의안이 끼워진 오른쪽 눈으로 옮아가 거대한 빛 덩어리로 응집되었다. 빛은 나의 오른쪽 눈을 삼켰다. 아니, 오른쪽 눈이 빛 그 자체로 화했다.
확!
빛 덩이가 눈앞으로 폭죽처럼 점점이 터져 나갔다. 빛이 점점 명멸하며 시야가 새카맣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의 눈에, 나의 오른쪽 눈에 뭔가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씩 나에게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것의 형체가 나의 오른쪽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이었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의 오른쪽 눈은 똑똑히 보았다.
그 눈. 그 눈은 그 날 그 골목에서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와 ‘니가 방금 우릴 꼬나봤냐’고 묻던, 그 세모눈이었다. 어두웠던 주변이 밝아지면서 주변의 모든 영상들이 일그러지고, 뒤틀리고,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와중에 오로지 그 눈만이 분명하게 나의 오른쪽 눈에 보였다.
놈은 불과 이십 미터 앞에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쪽 눈알이 진동하고 있었다. 나의 오른쪽 눈은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오른쪽 눈은 분노하고 있었다. 단말마의 경련을 하는 환자의 몸처럼, 나의 눈이 미친 듯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나와 놈의 거리가 불과 십 미터로 좁혀졌을 때까지도 놈은 나의 눈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 의안의 요동이 정점에 이른 순간, 나의 시선을 느낀 놈이 비로소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놈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공포. 나는 그토록 공포에 질린 눈을 본 적이 없었다. 놈의 눈알에 돋아난 실핏줄이 툭툭 불거지고, 눈동자는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투욱.
나는 보았다. 놈의 눈이 툭 튀어나오는 것을, 놈의 눈알이 원래의 자리를 이탈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1미터 길이 남짓한 철근은 나와 세모눈의 머리 위에서 공사 중이던 건물에서 떨어져 내렸다. 견고하게 쳐 있던 안전망 틈새를 날렵하게 통과한 철근은, 비스듬히 떨어지면서 바로 아래 서 있던 놈의 정수리를 꿰뚫었고, 놈의 뇌를 꿰뚫었고, 끄트머리로 놈의 눈알을 밖으로 밀고 나왔다. 놈의 눈을 뚫고 나온 철근의 끄트머리에 걸린 놈의 눈알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놈은 바위에 내동댕이쳐진 개구리처럼 선 자리에서 입을 쩍 벌리고, 온몸을 부르르 경련했다. 남은 한 눈으로, 공포로 가득 찬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놈은 힘없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철근 끝에 걸린 놈의 눈알이 가장 먼저 보도블록 위에 닿았다.
나는 들었다. 놈의 눈알이 툭 터지는 소리를.
“사람이 맞았어!”
머리 위의 건물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하나가 놀라 소리쳤다. 쓰러진 세모눈의 주위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 이미 놈은 심장이 멎어 있었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 전력질주로 현장을 벗어났다.
우연이야. 정말 어쩌다 저렇게 된 거야. 그럴 거야. 우연일 뿐이야. 아냐. 아닐 지도 몰라. 어쩌면 이 눈 때문인지도 몰라. 이 눈 때문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지도 몰라. 나는 속으로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허리를 숙여 가쁜 숨을 내쉬었다. 분명 세모눈을 보았을 때만 해도 보였던 나의 오른쪽 눈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야, 씨발. 나는 속으로 부르짖다 어느 순간 멈칫 독백을 멈추었다.
바로 앞 상점 진열장에 비추어진 나의 눈이, 나의 얼굴에 만면에 웃음을 담고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눈웃음.
나의 눈은 웃고 있었다.
그것도 오른쪽 눈만. 놀람으로 가득 찬 나의 왼쪽 눈과 득의에 찬 내 오른쪽 눈. 그 두 눈의 부조화가 하나의 얼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유로 나는 기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막혀 있던 것이 뚫리는 후련함과 내심 바랐던 금기를 넘어서는 사악한 성취감이 내 오른쪽 눈으로부터 솟구쳐 나와 나른한 약기운처럼 온몸에 서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눈은 진동하고 있었다.
미세하게, 잠든 내가 깨닫지 못할 만큼. 그 진동은 점점 심해졌고, 눈은 또다시 뭔가를 원하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편안히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두 눈을 감고. 그와 달리 내 오른쪽 눈은 깨어 있었다. 눈은 기다렸다. 내가 깊이 잠들기를. 내가 완전히 잠들자, 내 얼굴에서 유일하게 깨어 있는 오른쪽 눈이 눈꺼풀을 서서히 밀어 올렸다. 잠들어 있는 내 얼굴에서 오른쪽 눈만이 뜨였고, 왼쪽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눈은 조심스럽게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문제 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파악하자, 눈은 위로 치켜 올라가며 간교하고 잔인한 빛을 띠었다. 눈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잠이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방문 손잡이를 비틀어 밀고 밖으로 나갔다.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어머니는 친정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고, 아버지는 안방에 잠들어 있었다. 눈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나를 아래층으로 내려 보냈다. 중간에 술에 잔뜩 취한 남자 하나가 탔지만, 그는 오른쪽 눈만을 뜨고 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온 눈은 차분하게 걸어갔다. 어디로 가야할지 눈은 알고 있었다. 이미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1. 눈 (완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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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점점 더 흥미진진하네요..
점점 뭐랄까 기묘한 느낌으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어찌될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