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로봇의 성공적인 실사화
2005년의 어느날 마이클 베이는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의 변신 로봇을 소재로 장편 영화를 하나 연출할 생각이 없냐는 전화였다. "날더러 장난감으로 영화를 만들라고? 바보같은 장난감 영화에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하긴 세상의 어떤 정신나간 감독이 장난감 로봇에 감화받아 "그래. 지구로 떨어져 내려온 우주의 로봇종족에 대한 사실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한번 만들어볼까"라며 흥분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하스브로 장난감의 콜렉터를 자처해 온 스필버그야 "언젠가 트랜스포머 장난감이 거대한 여름영화로 ‘변신’할 것을 꿈꿨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마이클 베이는 아니다.
어쩌면 2005년작 <아일랜드>의 피골이 상접한 박스오피스 성적이 마이클 베이로 하여금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 이전만 하더라도 베이는 <진주만>에 진주만식 폭격을 쏟아부은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고, <나쁜 녀석들 2>는 돈도 좀 벌고 그들에게 복수도 할 겸 만들었노라 고백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쁜 녀석들 2>는 평론가들을 향한 ‘빅 퍽유(Big Fuck-you)’였다. 정말 거대하고 시끄러운 영화, 지나칠 정도로 지나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평론가들이 미워하지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말이다". 하지만 베이의 가장 야심만만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는 1억2천5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여하고도 미국 내에서 겨우 3천6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실패 때문에 베이가 <트랜스포머>에 도전했을까? 설마. <트랜스포머>는 인간형 로봇의 정체성 혼란을 다루는 SF가 아니라 스포츠카나 트럭으로 변신하는 거대 로봇에 대한 액션 영화다. 베이에게 <트랜스포머>는 (모두가 줄기차게 뜯어말렸다던) <진주만>보다도 훨씬 위험 요소가 큰 도전이다. "왜 이 영화를 내가 만들려고 하는 걸까". 마이클 베이는 스스로에게 끝없이 반문했다고 고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베이는 변신 로봇들을 설득력 있게 스크린에 되살려내는 모험을 거절할 만큼 재미없는 감독은 또 아니었던 것 같다.
마이클 베이 감독
막상 영화화에 뛰어든 마이클 베이는 영화의 이야기를 보기 좋게 다듬는 것보다도 장난감 회사의 대량생산 변신로봇으로 장편영화를 만든다는 개념 자체를 먼저 이해하려 했다. 그의 결론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변신로봇 영화와 리얼리즘의 결합이라니, 한마디로 그는 말도 안 되는 도전을 스스로에게 납득하려는 고통과 싸워 이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더 빠르고 거대한 파괴 미학의 세계
먼저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와 베이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로봇들이 둔하고 바보 같은 아동만화 세계의 소유물이라고 여겼다. 성인용 액션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의 변형이 필수적이었다. 클래식한 상자 모양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었던 베이는 "좀 더 자잘하고 많은 디테일이 첨가된 진짜 금속성의 기계"를 원했고, 이 같은 변형은 오리지널 팬들로부터 격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하지만 하드코어 오리지널 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울버린에게 검은 가죽 슈트를 입히려는 브라이언 싱어에게도 무한한 저주를 퍼부을 만치 완고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팬보이들의 세계와 다르다. 울버린에게 노란색 타이즈를 입히거나 변신 로봇들을 파랗고 빨간 박스 형태로 유지하면서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회수할 방도는 이 냉정한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아무리 디자인을 섹시하게 바꾸어도 <트랜스포머>의 이야기가 마이클 베이에게 딱 맞는 옷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프로페셔널한 12살처럼 살고 있는 기크(Geek)"라고 일컫는 코믹스 작가 존 로저스가 다듬어낸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아동용 변신로봇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에 딱 어울릴만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1977년형 스포츠카를 선물로 받은 소년 샘 윗위치. 물론 소년의 첫 자동차는 변신이 가능한 외계 로봇종족 ‘오토봇’의 일원 ‘범블비’였다. 동시에 ‘오토봇’의 적인 ‘디셉티콘’들이 카타르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공습하고 1급 정보를 빼간다. 멍청한 대통령을 위시한 백악관과 미군은 삽질을 거듭한 끝에 오토봇과 디셉티콘이라는 로봇 종족들이 샘의 할아버지가 20세기 초에 북극에서 발견한 메가트론과 에너지원의 위치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만화적으로 순결한 시나리오는 어쩌면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더라도 제작비 환수를 두려워해야할 종류의 모험일 수 있다.
<트랜스포머> 촬영 현장에서 샤이아 라보프(왼쪽)에게 지시하는 마이클 베이(가운데)
하지만 액션영화의 관점에서 <트랜스포머>는 완벽할 정도로 마이클 베이의 영화이기도 하다. 거대하고, 시끄럽고, 빠르다. 바로 그 때문에 베이의 영화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동시에 비평적으로는 가난한 평가를 받아왔다. 사실 초창기 작품인 <나쁜 녀석들>과 <더 록>을 제외한다면 그의 영화들이 감정적인 충만 상태로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던 적은 별로 없다. 베이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나와 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람들은 내가 시네마를 파괴했다고 말한다. 너무 빠르게 편집한다고 비난한다". <트랜스포머>에서도 마이클 베이는 도무지 카메라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극단적으로 빠른 편집으로 액션을 펌프질한다.
이건 절대로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수천만 달러를 들여서 창조해낸 로봇들이 도심 한복판을 파괴하며 벌이는 격전을 꼭 <블랙 호크 다운>처럼 찍어낼 필요는 없다. 베이는 관객을 로봇들의 전장터 한가운데 던져버리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모든 장면의 호흡을 몰아치지만, 오히려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에서 필요한 것은 값비싼 특수효과의 경이로움을 오랫동안 관객의 눈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킹콩>의 진정한 명장면은 뉴욕 시내를 파괴하는 킹콩의 격전이나 해골섬에서의 추격 장면이 아니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보는 노을의 아름다움이었고,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은 굶주린 랩터들의 추격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본 브라키오 사우르스의 우아한 곡선이었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대가인 제임스 카메론 역시 서서히 가라앉는 타이타닉을 원경으로 비추이며 특수효과의 서정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베이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장면전환과 편집의 속도가 빠른 영화다. 게다가 금속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로봇에 첨가된 수많은 디테일들은 너무나도 오밀조밀해서, 로봇들이 격전을 벌이는 순간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빠른 장면 전환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비일상적인 시각적 경이로움을 맛보게 하는데 실패하지는 않는다. 이는 <트랜스포머>가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구현된 ‘실사 거대 로봇 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1990년작인 스튜어트 고든의 <로봇족스>(Robot Jox)가 있긴 하지만, 일본 아니메적인 설정을 그대로 도입한 고든의 영화는 당시의 특수효과로는 단 10초도 감당해낼 수 없는 실패작이었다. <트랜스포머>는 일본 아니메의 단골 손님인 거대 로봇들을 소재로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첫 증거다. 그래서 이 영화를 특수효과 스펙터클의 신기원으로 묘사하는 것은 대단히 식상한 표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킹콩이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생명이 있는 괴물들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것이 금속성의 로봇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트랜스포머>는 특정한 소재에 대한 할리우드의 심리적 저항감을 무너뜨린 영화로 대접받는 것이 합당하다. 특수효과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소재를 과감하게 주류 트렌드로 끌어올리려는 모험이다.
<트랜스포머>는 훌륭한 블록버스터인가. 글쎄. 마이클 베이의 신작은 <스파이더맨 3>처럼 약삭빠른 블록버스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트렌드와 향후 십여 년간 끝없이 터져 나올 ‘새로운 장르’를 발견해낸 블록버스터로서 기념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제 샘 레이미나 브라이언 싱어가 코믹스 원작영화에 뛰어든 것처럼 비교적 비주류에 속해있던 작가들이 ‘장갑기병 보톰즈’나 ‘패트레이버’의 영화화를 실현시키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테크놀로지의 화력을 갖춘 새로운 믿음이 도달했고, 이제 할리우드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은 없다. 1억5천만달러짜리 무지막지한 마이클 베이의 스펙터클이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트랜스포머>는 블록버스터 스펙터클의 신전에 도전하는 우리를 향해 할리우드가 던지는 ‘변신’의 최초 예고이자 최후 경고다.
관련 리뷰 <트랜스포머> by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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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마이클 베이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의 감성을 이해한것일까..
Tracked from Log : Lampard 2007/06/20 19:01 삭제허리우드 특급 감독이 직접 여주인공까지 데리고 왕림하셔 전세계 최초로 공개하셨습니다. 그 이름도 향수어린 : <트랜스포머 Transformers> 기자 시사회에 참석하신 분들의 리뷰가 인터넷에 살포중인데요. 일단, 심한 조롱과 극도로 열광적인 반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전선(?)의 중심에 조용히 팔짱끼고 미소짓는 한 사나이가 보이구요..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이죠. 마.이.클.베.이 저에게 마이클 베이는 몇몇 지겨움이 가득찬 영화로 기억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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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트랜스포머, 테크놀러지를 이야기하다.
Tracked from Feel the Freeism 2007/07/02 11:21 삭제- Precomment -본 내용에는 네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보지 않으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 '개봉일에 봐주마!!!'라고 노래를 해 놓고는 결국 몇 일 지난 지난 주 토요일날 봤습니다.트랜스포머!!!별점부터 주고 싶군요!!!★★★★☆ (4.5/5)저 별점은 블럭버스터로서의 별점입니다.올 여름 여러 블럭버스터들의 아쉬움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아주 통쾌한 영화였습니다.영화의 내용이나 눈여겨 봐야 할 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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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날만 목놓아 기다리고 있습니다...초등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서 전 조조로 볼 생각입니다...그 압박을 견딜 수가 없어요..^^
어쨌든....
저도 개봉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듀나의 리뷰와 함께 제일 정곡을 찌르는 리뷰 같습니다. 시각효과에 비할만큼 성숙한 연출은 없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시각적 성찬은 결코 무시할 바가 못됩니다.
기다립니닷!!
ㅎㅎ